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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pr 08. 2023

물 아깝다고 빗물까지 받아두신 어머니

봄비가 모든 걸 해결했다

재난문자가 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문자를 보고 겨울 가뭄이 심각한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문자가 온 이후로도 가뭄은 계속되었고, 우리 지역 상수원의 저수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다가는 3월부터는 격일제 급수가 시행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봄이 되었지만 뾰족한 수는 생겨나지 않았다. 문자는 계속되었고, 말라가는 댐을 바라보는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샤워 시간을 줄이라는 말에 샤워기의 수압을 낮췄고, 매일 하던 빨래도 하루씩 건너뛰어 세탁을 했다. 하루를 건너뛰다 보니 쌓인 빨래 양이 많아져 하루에 두 번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루에 한 번씩 빨래를 했다. 늘 하던 일을 하는데도 마음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격일 급수의 마지노선, 3월이 되는 게 두려웠다.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3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격일제 급수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보긴 어렵다. 여전히 저수량은 불안한 상태이고, 기상 변화는 예측이 힘들다. 우리는 그저 자연에 의지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뿐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조해진 날씨로 산불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만 해도 하룻 동안 서른 곳이 넘는 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써야 할 물도 부족한 판에 엉뚱한 곳에 물을 쓰게 생겼다. 산불의 규모가 커지니 인간이 겪어야 하는 위험의 강도도 커졌다. 거대한 불기둥 앞에선 인간의 모습은 나약해만 보였다. 바람이 거세질 때는 제발 비 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산불을 지켜본 며칠 뒤, 봄비가 내렸다. 말 그대로 단비다. 때를 맞춰 내려주는 고마운 비를 우리네 조상들은 신령스럽다 하여 영우(靈雨)라고도 불렀다 한다. 맞는 말이다. 참으로 신령스럽고 고마운 비다. 우리 지역에서는 봄비가 3일 동안 계속 내렸다. 비는 대지를 적셔 주었고, 건조해진 대기를 촉촉하게 안아주었다. 당분간 산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비가 내리니 마당에선 얼굴을 씻은 나무와 꽃들이 자태를 뽐내느라 야단이다. 나무는 싱그럽고, 꽃은 빛난다. 그동안 먼지를 뒤집어써도 시원스럽게 씻어주지 못했는데 봄비가 나의 수고를 대신해 주었다. 봄비 한방에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부족한 일이었다.

조금씩 색을 내기 시작하는 꽃과 나무


어머니께선 한 방울의 빗방울도 아까우셨는지 김장할 때 쓰던 배추절임통을 끌고 와 물을 받으셨다. 지붕을 타고 내린 물이 3일 동안 배추절임통을 가득 채웠다. 그 물은 화분과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의 일용한 양식이 될 것이다.

받아낸 물의 양이 제법 많았다
뜯어 먹어서 잎이 초라해진 상추

비가 왔을 뿐인데 산불은 잠잠해졌고, 물 걱정은 줄어들었다. 우리가 안달복달한다 하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가끔 자신이 자연의 지배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마음대로 땅을 파고, 물의 흐름을 바꾼다. 그러다 자연이 조금만이라도 몸을 뒤틀면 화들짝 놀란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전전긍긍 몸 둘 바를 몰라한다.


자연은 약해 보이나 강하다. 가만히 두면 한없이 너그러우나 건드리면 불 같이 화를 낸다. 두려운 존재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늘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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