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Nov 11. 2019

여치는 왜 악녀가 되었을까?

배신당한 여자의 반란


 나는 삼국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적과 아군의 구분조차 모호하며, 너무 많은 인물들의 등장에 따로 표를 정리하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 방대함이 싫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초한지는 좋아한다. 비교적 짧은 기간의 역사를 다룸도 좋고, 인물들의 명확한 성격 구분이며, 확실한 결론도 좋다. 그래서 유비, 조조, 손권보다 항우와 유방을 이야길 하길 더 즐긴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어 인간의 심리까지 읽어내는 사람이나 삼국지를 통해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갈 전술을 익힌 사람들에겐 이런 나의 의견이 어리석은 판단이 내린 결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나의 의견에 토를 달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잠시 자제를 부탁한다.


 초한지, 영웅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여자 이야기는 그들의 벌인 권력 다툼보다 더 큰 흥밋거리로 다가온다.


 우희와 여치, 항우와 유방의 여자들이다. 나는 두 여인의 삶에서 항우와 유방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영웅의 아내에서 최고의 악녀가 되어야 했던 여치의 삶을 보며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여자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역사 속 유방은 승자가 될지는 몰라도 수신제가에는 실패한 인물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겠지만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올린 조강지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방은

            

 "나는 재능에서 장량, 소하, 한신에 못 미치지만 모두를  다룰 수 있었는데, 항우는 범증 한 사람도 다루지 못했다"라는 말로 자신이 항우보다 뛰어남을 표현했으며, 그의 책사인 한신은

 

"항우는 재능에서 유방을 능가하지만 성격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므로 큰 인물이 못된다."

라는 말로 유방은 후덕한 군자고, 항우는 도량이 좁은 소인배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시바 료타로는 '항우와 유방'이라는 책에서 항우는 고상하고 신사적인 사나이로 의리를 존중하고, 다소 난폭한 성격이 있으나 약속은 지킬 줄 안다고 표현한 반면 유방은 후안무치한 졸장부로 간사한 최후의 승리자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역사에서 다뤄지는 그들의 평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유방이 그 평가에서 몇 점은 먹고 들어갔다고 볼 때 항우가 그렇게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권력자만은 아녔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항우가 자신의 여자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항우의 여자는 우미인이라 불리는 우희이다. 중국의 4대 미인에 들지는 않지만 우희를 4대 미인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만큼 항우의 여자는 예뻤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항우를 대하는 그 마음 또한 예뻤다. 우희의 삶은 항상 항우와 함께 였다. 그가 전쟁터를 누빌 때 그의 곁을 지키며 항우에 대한 믿음도 지켰다. 


 항우가 유방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항우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바로 우희이다. 우희는 진심으로 항우를 사랑했으며 끝까지 그를 지킨 여자다. 그녀의 믿음이 항우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유방의 여자인 여치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여치는 측천무후, 서태후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악녀로 불린다. 부유한 호족 집안의 딸로 태어나 말단 관리인 유방과 결혼하여 혹독한 시집살이를 치른 여치는 유방이 힘든 시기를 겪을 때마다 그 곁을 지켜준 조강지처였다.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고 중국 최고의 시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여자가 여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한나라를 건국하고 조강지처인 여치를 외면한 채 아름다운 후궁 척희에게 빠지고 만다. 영웅호걸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로 그의 취향을 미화하지만 여자에게 있어 사랑의 배신은 서릿발을 부르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몰랐던 것이다.


 사랑과 전쟁에서 패배한 여치는 마음속에 분노를 키운다. 척희를 향한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만 이게 어찌 척희에게만 향할 분노란 말인가? 하지만 여치는 척희에게만 분노했다. 그리하여 유방이 죽은 후 마음속에 품었던 복수를 시작한다.


 여치는 척희에게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든 후 눈을 도려내어 멀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사지까지 잘라 돼지들이 사는 변소에 넣어 인간 돼지를 만들고 만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여치의 아들마저 엄마의 잔인함에 왕위까지 버리는 충격에 빠졌다고 하니 그녀의 복수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다. 유방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배신한 사랑이 얼마나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를 말이다.


 여치의 행동은 단순히 순간에 형성되었다곤 보기 어렵다. 어쩌면 여치는 시집살이의 혹독함을 견뎌내며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에 유방은 배신이라는 이불을 덮어버렸으니 그동안 여치가 참고 견뎠던 고통은 시궁창에 버려진 쓰레기와 같은 가치가 되고 만 것이다.


 역사가 후덕하고 호탕한 왕으로 기억하는 유방이 한 여인만을 사랑한 지고지순한 사람이었다면 여후의 악행은 없었을 것이다. 조강지처를 버린 유방의 경솔함이 여후와 척희라는 두 여인의 삶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여치의 악행은 유방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여치에게는 유방의 보상이 있어야 했는데, 유방은 보상 대신 배신을 줬다. 여치가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는 유방의 배신이 있었고, 그 허무함을 권력으로 채우려 했던 여치의 권력욕이 있었다. 유방의 배신, 여치의 권력욕이 결국 여치를 악녀로 만들었다.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보아야 한다.  


 남자들이여, 절대 여자의 사랑을 배신하지 말라. 세상 모든 여자는 여치가 될 수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공모전에 도전을 했다. 기대는 몰염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