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람 손순의 집안은 가난했다. 그래서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 와중에 아들 녀석은 늘 어머니의 밥을 탐냈고, 손자를 귀여워한 어머니는 자신의 밥을 손자에게 양보하기 일쑤였으니 제대로 먹지 못한 어머니는 병이 날 수밖에.
아들 녀석 때문에 어머니가 병이 났다고 생각한 손순은,
'자식이야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번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니'
라는 생각으로 아들을 산에 데려가 땅에 묻고자 한다. 즉 효도를 위해 자식을 죽이려 한 것이다.
손순이 아들을 묻으려고 땅을 파다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돌로 만든 돌종이 었다.
손순의 아내는 하늘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돌종을 발견하게 한 것 같으니 아들을 묻지 말고 데려가자고 말하고, 손순 역시 자신이 저질렀던 순간의 잘못을 깨닫고 돌종을 파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온 손순이 처마 밑에 돌종을 매달고 종을 치니, 그 소리에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돌종의 은은한 소리는 궁궐에 까지 퍼져 임금님까지 감동시키며 손순의 돌종은 효심의 징표로 인정받게 되었다.
삼국유사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손순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만약 손순이 효를 행하기 위해 정말로 아들을 땅에 묻었다면 이 이야기는 잔혹동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효를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했기에 절대 그런 결말을 만들어선 안 되었다. 결국 손순의 효는 하늘에 까지 닿아 복을 받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손순은 생각은 불순했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자 한 행동이라지만 자기의 자식을 희생시키려 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대체 가능한 물건처럼 여긴 것 또한 손순의 죄다. 자신이 효를 실천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건 절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손순에 효에는 치사랑만 있고 내리사랑이 없었다.
며칠 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남편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 내가 집을 비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남편에겐 징크스처럼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도 내가 없을 때 남편은 사다리에 올라갔고 사다리가 미끄러지는 통에 갈비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남편이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항상 곁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하필 약속이 잡힌 날 남편은 신발장 만들고 있었다. 그냥 살 수도 있는 신발장을 남편은 손수 만들고 싶어 했고, 신발장이 완성된 것을 보지 못한 나는 외출을 해야만 했다. 남편은 금방 끝나니 괜찮다고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나는 그 마음을 안은 채 외출을 했다.
6시에 있었던 모임은 9시가 넘어서 끝났다. 모임에서 돌아오니 식구들은 그제야 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내가 나간 후 계속되었던 남편의 작업은 생각보다 늦어졌고, 자연히 저녁도 늦어진 것이다.
남편은 작업으로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잠깐 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살이 다 빠져 보였다. 어머니께서 남편이 최고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자꾸 하시는 통에 나의 미안한 마음은 숨을 구멍조차 찾기 힘들었다. 남편은 왜 자꾸 일을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런 나의 생각이 비친다면 남편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만든 것을 부셔버린다고 말할 게 분명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했고, 미리 말한 나의 정당한 약속은 이렇게 죄가 되어버렸다.
어머니께서 부엌을 나가신 뒤 남편은 나에게 섬뜩한 얘기를 했다. 저녁이 이렇게 늦어지는 데도 자식들 중 누구 하나 할머니 식사 걱정하는 놈이 없었다면서 말이다.
물론 아이들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일하는 자식을 위해 어머니께서 저녁 한 끼 정도는 차려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께서 노래 연습보다 고생하는 자식을 먼저 생각했다면 저녁상은 차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며느리 입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변호하기 위해 말한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도 아이들도 저녁을 준비하지 않았고, 일을 마친 남편이 저녁을 차려야 했기에 식사 시간은 그렇듯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몹쓸 말을 쏟아내는 남편을 보고 난 내 자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되내었다.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발생했다.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발생했다'
그래서 또다시 다짐했다.
'다시는 남편이 일을 하고 있을 땐 외출을 말아야지, 절대로'
우리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앞지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난 손순과 그의 마인드를 가진 남편을 보며 내리사랑 못지않게 강력한 치사랑이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