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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02. 2020

새해 첫날 남편은 취미 생활을 했다.

제대로 취미를 찾았네.

특별했던 이틀을 보냈다.


아쉬운 맘도 있었지만 시원스럽게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이한 2020년은 좀 더 의미 있는 날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다행히 어제는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낭비하지 않았기에 나름 만족스럽게 한 해를 시작한 거 같다.


그리고 더 다행스러운 것은 아들과 남편이 서로를 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난 일을 잊은 것이다. 딸과는 아직 앙금은 남은 듯하나 겉으로는 내색이 없으니 이 역시 나쁘지 않단 증거다.

올해는 부디 가족이란 이름으로 상처와 아픔을 남기는 일이 없길 바라보며, 또 그리 되리라 믿어본다.


새해 첫날부터 점심을 먹자마자 남편은 공구통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며 마당으로 나갔다. 쉬는 날은 몸과 마음 모두를 쉬게 하고 싶었는데... 어제만큼은 반기를 들고 싶지 않아 나 역시 남편을 따라 마당으로 갔다.


내가 남편을 따라나선 것은 뭐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옆에서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말동무나 되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남편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말동무가 되어 추임새를 넣어주는 일은 일하는 사람에겐 노동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기에.


남편은 지난번에 만든 신발장이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며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공방을 다니며 배운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하나하나 찾아보고 만든 작품이 의젓하게 자신의 몫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대견했던 것이다. 나 역시 나무를 깎을 때만 해도 그런 작품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완성된 작품을 보고 사뭇 감탄을 했던 바였다.


남편은 퇴직 후 자신의 삶을 채워줄 취미거리를 찾고 있던 중 이 일, 목공일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반갑게 찾아낸 것이다.


목공예는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남편에겐 딱 맞는 취미였다. 나는 공방엘 다니며 정식으로 배우라고 했지만 남편은 인터넷으로 다 배울 수 있다며 작은 공구부터 하나씩 사 모으더니 결국에는 나무를 자르는 저 무시무시한 기계까지 사들이고 말았다. 그 기계를 사고 나니 실험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졌고, 쉬는 날이면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 가만있질 못하는 몸이 되었다.

나는 날카로운 톱날이 나무를 가를 때마다 콩알만 해진 심장을 누르며 숨을 멈췄다. 기계만 있으면 공방에서 배울 필요 없이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남편의 말이 맞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기계는 정확하게 나무토막들을 잘라냈다. 남편은 그 나무토막들을 목공 풀로 붙이고, 총으로 퍽퍽 못을 박았다. 참말로 기계들의 힘은 컸다. 기계들은 순식간에 상자 하나를 뚝딱 만들었다.

나무 먼지를 뒤집어쓴 남편이 씩 웃으며 상자를 들어 보였다. 먼지 구덩이 속에 빠져도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킨 작품만큼은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이 되어 잠못든다 하였는데 나의 남편에겐 부지런이 병이 되어 가만있질 못하게 한다. 그런데 그 부지런함이 감사하게도 물건을 하나씩 만들어 내니 이 또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취미생활은 당사자에겐 기쁨을 남기고 우리 집에는 작품을 남긴다. 결코 밑진 장사가 아니다.


이제는 남편을 위한 작업실을 만들어야겠다. 이전 글에서 남편을 우리 집의 빌런으로 만든 일이 많아 미안했는데, 새해에는 남편을 위한 일도 하나쯤 하고 싶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남편의 작업실이 공개되길 공약 아닌 공약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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