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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04. 2020

이불속은 위험해.

습관을 망치는 일.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요, 몸이 기억하도록 뼈 속 깊이 각인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대가로 만들어진 습관도 어느 한순간 나태와 게으름 속에 발끝이라도 담글라치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요 며칠 사이에 경험을 했다. 마치 영원할 것 같았던 수도원의 견고함이 화마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던 장미의 이름처럼 말이다.


2019년,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를 시작한 일과 습관을 만든 일이었다.

아침 아니, 새벽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독서를 하는 일은 내가 좋은 습관을 몸에 길들이기 위해 실천했던 노력들이다. 그 일들은 지금까지 나의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게으름과 꿈결 같은 잠과의 싸움이었기에 결코 만만하게 도전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습관 만드는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격려하고 응원하는 동안 나 역시 좋은 습관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승리자의 여유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분명 예전 그대로의 나인데 투명의 또 다른 몸이 내 몸 위에 한 겹 입혀지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마냥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훨씬 부드러워진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런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 어렵게 입은 그 옷을, 더운 여름도 아닌 이 추운 겨울에, 난 아무 죄책감도 없이 벗어버리고 말았다.


"~?" 

"숨은 복병이 너무 강력했으니까."


이 역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내가 정성을 들여 가꾼 '노력'이란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궁색하게나마 핑계를 대야 것만 다.


그렇다면 나를 무너뜨린 복병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사소해서 비웃을지 모른다.  그것은 이불, 침대 위 전기 매트의 뜨끈함을 잘 감싸 안아주었던 망할 놈의 이불 때문이었다.


예전에 나는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하루 한 편의 글을 목표로 했기에 아침 시간은 오롯이 글쓰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서 남편의 출근 시간이 앞당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순전히 기분 탓이었지만 여름날의 출근 시간과 겨울날의 출근 시간은 분명 달랐다. 겨울의 7시는 새벽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난 여지없이 이불속으로 찾아들었고,  5분만...10분만... 하던 시간은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오전에 글을 쓰던 나의 습관은 그 자체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으니 난 이전의 나로 돌아갔다. 겨울날의 이불속은 너무도 뜨거워서 내가 공들여 쌓은 습관을 순식간에 사르르 녹여 버렸다.


이렇게나 위험한 이불속에 계속 머무르는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위험을 알면서도 지속한다는 것은 기름통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나의 행동이 바꾸지 않으면 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각을 했으면 변해야 마땅하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 나의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뜨끈한 이불속에서 탈출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지금의 시간이 증인이다. 난  내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지금의 시간을 소환하여 무너진 나의 습관을 쌓아 올리는 밑거름으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부드러운 승리자로 부활할 것이다.


공들여 쌓은 나의 습관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겨울날의 이불속.

그래서 이불속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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