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치마를 입지 않는 건 내 책임이 아니야.

옷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갖다.

by 은빛구슬


딸이 치마를 입지 않는 것은 나의 책임

딸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유치원 때 원복을 입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날들을 바지로 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어렸을 땐 간혹 주변 사람들이 여자 아이란 이유로 치마를 사 주긴 했으나, 내가 내 손으로 치마를 사 입힌 적이 없으니 초등학교 입학 후론 거의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딸이 치마를 입지 않는 이유? 이건 순전히 본인의 의지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나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 나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딸이 어렸을 적, 내가 딸의 옷을 구입할 때 첫 번째 조건으로 삼은 것은 동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옷이냐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란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몇 해를 못 입고(심지어 한 해만 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으니) 옷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아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딸의 옷을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남동생인 아들을 위해 치마가 아닌 바지를 구입해야만 했다. 그런 관계로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들은 동생이 물려받아 입어야 했고, 옷 구입에 있어 딸의 취향 따위는 무시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딸은 이런 나의 행동에 반기를 들지 않아 초등 저학년이 될 때까지 이 일은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딸의 옷 대물림도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끝이 났다. 딸과 아들의 키와 몸무게가 비슷해지면서 더 이상 옷을 물려주고 받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딸의 바지 사랑은 계속되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입은 교복 역시 바지로 일관했으며 지금까지도 바지의 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도 자신의 취향이 있었다


나는 딸과 아들이 옷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일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동안 내가 사다 준 옷을 잘 입고 다녔기에 옷에 대해선 그들만의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들이 크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에 아이들은 옷에 신경 쓸 일이 없어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와는 전혀 다른 취향으로 말이다.


지금은 아이들의 옷을 사오지 않는다. 직접 가서 사게 하거나 돈을 주고 구입하게 한다. 그동안에는 어떻게 옷을 입고 다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둘은 나와 취향이 다르다. 딸은 내가 좋아하는 네이비나 그레이 계통의 옷을 싫어한다. 검정색과 흰색을 입을 뿐이다. 아들도 제일 싫어하는 색이 네이비와 그레이다. 내가 그동안 그런 계통의 옷을 너무 많이 입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 아들은 오히려 밝은 민트나 핑크를 좋아한다.


난 내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의 취향을 무시하고 나의 생각대로 옷을 입혔기에 지금도 내가 사주는 옷이면 아무 말 없이 입는 그런 아이들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것이 오히려 고맙다. 어린 시절, 절약을 한답시고 나의 행동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취향도 찾지 못하는 개성 없는 아이들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저리 투철하게 자신들의 취향을 피력하니 그마저도 고맙다.


이제는 딸이 치마를 입지 않는 건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안다. 누나의 옷을 받아 입었던 아들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있다. 딸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바지만 입고 다닌 것이 내가 어린 시절 바지를 입혀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빠졌었는데 그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비록 치마와는 멀어진 딸이지만 그것이 엄마의 탓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 말해주는 딸이 고맙다.

누나의 옷을 입고도 씩씩하고 당당했던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 개구쟁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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