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딸의 존재를 부정하며 '당신 딸'이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줬던 남편에 대한 글을 썼다. 근 6개월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듯 남편의 기분을 살피고 딸의 행동을 절제시켰다.
그 글을 읽은 누군가는 자기주장 하나 내세우지 못한 사람이라며 나를 탓했을 것이고, 인정 없는 아빠라고 남편을 비난했을 것이며, 부모에 대한 예의가 없는 자식이라며 딸을 흉봤을 것이다. 이렇듯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실속 없는 글을 난 내 감정의 분출구마냥 순화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토해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어?"
라며 까마득한 옛날의 일을 기억하듯 다시 글을 쓴다. 불과 며칠 만에 역전된 집안 분위기에 화해의 공기는 자유롭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마신 남편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니 해결의 실마리가 된 '국선생'의 힘도 대단하다 말할 것이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술을 마시면 흥겨움을 주체 못 해 옛다 받아라며 돈을 쥐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몸을 다쳐 한동안 술을 마시지 못했다.
그런데 설 연휴 전날, 친구와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난데없이 딸과 술을 마시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것도 아주 기분이 좋게. 그건 딸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였다. 남편의 의중을 파악한 나는 귀여운 아이 엉덩이를 두드리듯 남편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잘했다' '고맙다'를 연발했다.
남편은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을 흘렸고 나중에는 이런 시간을 너무나 갖고 싶었다며 콧물까지 쏟았다. 딸도 덩달아 울었다.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주고 받던 아들과 나는 기쁨의 포옹을 했다. 어머닌 늦은 시간이지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시키라며 못 마신 술까지 홀짝거리셨다.
그렇게 남편과 딸의 냉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저번 주 딸의 방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갔던 날 난 너무나 닮은 부녀를 봤다. 둘은 비슷한 걸음걸이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내 앞을 걸었다.
그들은 또 닮은 식성까지 보여줬다. 도착한 용산역에는 설렁탕, 콩나물국밥, 비빔밥 등등... 다양한 밥집도 많았는데 둘은 굳이 고기를 먹겠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밥집이 아니라 서브웨이였다. 그들의 입맛은 나의 입맛을 당기지는 못했으나 난 기특한 그 둘을 용서하기로 했다.
ktx에서 내려 다시 손을 잡고 걷는 둘을 보며 생각했다.
'옛말이 틀림이 없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그 말이 맞았어'
저 말에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보다 더 큰 거야'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때 남편이 뒤를 돌아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