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비밀이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by 은빛구슬
물고기를 죽였다.


3주다. 아직 꽉 차지도 않은 3주. 그 3주의 시간이 2년의 시간을 잡아먹어 버렸다. 내가 그렇게 했다.


딸은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아이다. 그 물건들이 귀하고 좋은 것이어서 가진 애착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물건이어서 그런 것이다.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물건도 있고, 너무 낡아 버리고 싶은 물건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어린 시절 이불 귀퉁이를 만지며 안정을 찾던 딸의 모습을 본 후,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딸에겐 의미가 있을 수 있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딸이 독립하면서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하도 만져서 털이 몽글몽글 뭉쳐버린 낡은 허스키 인형에 색까지 바랜 값싼 귀고리, 빨래할 때마다 덕지덕지 먼지가 달라붙었던 까만 바지... 가져가지 말았으면 싶은 물건들을 꾸깃꾸깃 구겨 넣었다.


그런데 정작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었던 물건(?)이 있었다. 정확히 말해 물건은 아니고 생명체. 아주 작고 귀여운, 딸이 애정을 다해 키운 물고기가 그것이다.


2년 전, 딸은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그 물고기를 받았다. 동물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동물이라면 질색하는 엄마로 인해 고양이며 강아지, 그 어떤 동물도 키우지 못했던 딸은 친구의 뜻밖의 선물에 무척이나 신이 나 있었다. 이 동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 엄마의 심기를 건드릴 염려가 전혀 없었던 거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딸은 행복해 했다. 방 청소는 하지 않아도 어항 청소는 했고, 자신의 밥은 챙겨 먹지 않아도 물고기 밥은 챙겼다. 미끈덕거리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박박 문질러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았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운 물고기였기에 독립할 때 어항을 안고라도 가져가려 한 것인데 내가 그걸 말렸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두고 가. 밥은 엄마가 주고, 청소는 아빠가 하면 되잖아"

"재는 민감한 애니까 온도 잘 맞춰 줘야 해. 어항 청소 후에는 바로 밥 주면 안 되고. 챙길 게 많아"

"알았으니까 걱정하지마. 엄마가 그 정도도 못할까?"


그렇게 다짐을 받고 물려받은 물고기였는데 어젯밤 난, 어항 바닥에 가라앉아버린 물고기를 발견한 것이다.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분명 시간에 맞춰 밥도 주고, 다른 어떤 장치에도 손을 댄 적이 없는데... 그런데 왜?


작은 물고기 한 마리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먹이를 주려고 다가가면 내 앞으로 쪼르르 헤엄쳐 왔던 고 귀여운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허전했다. 딸에겐 뭐라 말하지? 어떻게 말을 꺼낼까? 아니, 집에 올 때까지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딸은 자신이 키운 동물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 눈시울을 붉히는 가슴 아픈 기억이다.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우리 집에선 허스키 두 마리를 키웠다. '샘'이라 불린 덩치 큰 수캐와 '진'이라 불린 작고 얌전한 암캐였다. 딸은 수캐보다 작고 얌전한 암캐를 좋아했다. 성격이 온순했던 '진'이도 어린 딸을 잘 따랐다. 그런 진이가 새끼를 낳고 나이가 들자 아버님은 '진'이의 어린 자식을 키우기로 하고 '진'이는 시골에 사시는 아버님 친구분 댁으로 보내 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와 이 일을 안 딸은 "할아버지 나빠"를 연신 외치며 한참을 울었다. 시간이 지나도 문뜩 문뜩 "아빠, 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라고 남편에게 묻곤 했다.


그렇게 진이가 조금씩 잊히고 있을 때 남편이 딸에게 '진'이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딸은 눈을 크게 뜨고 "정말? 정말?" 믿기지 않는 듯 묻고 또 물으며 봄날의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남편은 딸과함께 아버님을 모시고 진이를 보러 나섰다.


그런데 진이를 보고 온 딸이 먹구름을 한가득 몰고 돌아왔다. 그러더니 잘 보고 왔냐는 내 말에 결국 눈물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기 앞에서 다신 '진'이 얘긴 하지 말란다.


"아버진 뭐 그런 집에 진이를 보내요?"

"아, 시골에선 개를 다 그렇게들 키우지. 얼마나?"

"괜히 갔다 왔어요. ㅁㅈ만 속상하게......"


아버님 친구분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개집을 짓고 그곳에서 진이를 키우고 계셨다 한다. 다른 동물로부터 밭을 지키라고 그런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이는 그렇게 외로이 지내고 있었다. 처음엔 딸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배가 쑥 들어간 홀쭉한 모습에 꼬질꼬질 더러워진 털을 하고 무섭게 짖어대기만 했단다. 딸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물러섰는데 잠시 뒤 조용해진 '진'이가 꼬리를 흔들고 딸에게 다가왔단다. 그제서야 옛 주인을 알아본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딸은 눈물을 흘렸고.. 더러워진 '진'이를 쓰다듬고는 아무 말없이 차 안으로 와서 진이가 불쌍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때의 일은 딸이나 우리 가족 모두에게 슬픈 기억이 되어 남았다.

<진이를 닮은 우리 동글이>


그 일이 있고 난 후 될 수 있으면 살아있는 생명은 키우지 않으려 했다. 사랑을 쏟아야 하는 애완 동물은 특히 그랬다. 그런데 물고기를 키우게 됐고, 난 딸에게 또 슬픈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난 물고기를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다. 방 청소를 하러 들어갔을 때도 밥만 줬지 사랑은 주지 않았다. 밥을 주면서 눈도 맞추고, 쳐다봐 주던 딸의 행동은 따라 하지 않았다. 딸은 사랑을 주고 있었는데 나는 밥만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물고기가 죽었다. 내가 물고기를 죽였다. 딸의 귀여운 파랑이를.

우리 집에는 어장이 있다. 어장 안에선 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가끔 거기서도 죽은 물고기가 나오지만 그것들이 죽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슬퍼하진 않는다. 그러나 딸의 물고기는 다르다. 딸의 2년의 정성과 사랑이 그 물고기에 남아 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이어서 잘 키우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작은 물고기도 사랑이 없으면 씩씩하게 자라질 못했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먹이로만 자라지 않았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쓰다듬어 주고, 이쁜 말을 해 주고, 따스하게 쳐다봐 주는.


사실대로 말하고 물고기 키우는 걸 그만둘 것인지, 비슷한 물고기를 사다 다시 키울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만약 다시 키우게 된다면 두 번의 실수는 없도록 키우는 법을 잘 배우고, 사랑을 주면서 기를 것이다.


딸이 나를 이해해 줄까? 두려운 마음뿐이다.


파랑아, 미안해.

딸,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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