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날려버린 시어머니의 생신

이번 생일은 취소다.

by 은빛구슬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가끔 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은 행복했으며 기억하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사춘기를 맞기 전, 나에게 어린 시절은 행복 자체였다. 특히 도시로 오기 전 시골에서 살았던 기억은 지금도 곱씹고 싶은 아련한 추억이다.


종갓집이었던 큰집에서 할머니와 살았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가 특별히 다정하고 살가워서가 아니라 그 당시 큰 집에서 달마다 치렀던 제사나 절기마다 행했던 행사가 어린 나에게는 마냥 좋은 이벤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행사 때는 맛난 것을 먹을 수 있고,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희희낙락 거리며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는 결혼하여 살면서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고 있다. 할머니나 큰엄마가 느꼈을 말도 못 할 힘듦을 그때는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난 떡이며 두부, 조청, 메밀묵... 많은 음식들을 집에서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할머니나 큰 엄마가 그녀들의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며 신나게 그 일을 즐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연년생인 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와 큰집에서 살게 된 내가 그곳에서 느꼈던 행복만큼 큰엄마도 행복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조카와 자식이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안 지금은 그 일 또한 힘든 일이었음을 마음속 깊이 미안해하며 이해하고 있다.


제사는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었다.

큰집 제사는 하루 이틀 준비해서 지내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10일 전부터 음식을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는 장기전 있었다. 그리고 제사 2~3일 전이면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큰집에 고기며 생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그 동네는 우리 일가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그곳은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의 집성촌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많은 재료가 모여 제사 음식이 준비되었고, 제삿날 오후에 나는 재료를 보내 준 친척 집을 돌며 떡을 날랐다. 집에 어르신들이 안 계시면 부엌으로 들어가 그릇에 담아 놓는 일도 익숙하게 잘해 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집안 행사는 잔치처럼 즐거운 이벤트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집안 행사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 제사나 명절, 시부모님 생신과 같은 집안 행사는 머리가 아프거나 하는 골치 아픈 일은 아니다. 하여 명절도 나쁘지 않고, 제사도 그럭저럭, 생신 또한 지낼만하다. 정확히 말해 이런 날은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 수 있는 즐거운 날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음력 정월 대보름, 어머니 생신을 지내지 못하게 되었다. 생신 취소의 주범은 내가 사는 지역을 강타한 몹쓸 코로나 바이러스란 놈이다.


며칠 전만 해도 남편과 난 어머니 생신 준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이번 생신 때는 좀 다른 걸 먹으면 좋겠는데 형님들은 뭘 준비해 오실까? 고모네가 또 낙지랑 해삼 굴을 사 오시면 손질하고 음식 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냥 음식을 사 가지고 오라고 전화할까요?"


"자기들 각자 알아서 해 오라고 해. 뭐하러 전화하고 말고 해. 우리는 우리 것만 준비하면 되지"


"그래요. 그럼.. 우리가 케이크는 사야겠고, 미역국 끓이고, 홍어 무치고... 닭다리 굽고 이 정도 해요?"


그런데 우리 지역에서 코로나 바이어스 확진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옴과 동시에 어머니께선 아주버님과 고모네 집에 전화를 걸어 올해 생신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간단하게 찰밥에 미역국만 먹자 신다.


순간 밀어닥친 허전한 이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형님들과 수다를 떨지 못해? 아님 나 혼자 생신 준비를 해야 해서? 옳은 선택이라 생각하면서도 잠시 서운한 마음이 든 것은 저 두 이유 중 어느 것 하나가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이리하여 결혼 후 처음으로 어머니의 생신은 우리 가족끼리 단출하게 지내게 되었다. 살다 보니 집안 행사를 막는 천재지변도 겪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놈의 바이러스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차별을 받거나 피해를 받은 일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가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에 차별을 받았다는 글을 읽기도 했으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날려버린 어머니의 생신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날로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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