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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Feb 13. 2020

저 연예인은 이쁜 사람이 요리도 잘하네.

자격지심인가? 기분이 좋지 않아.

음식에 관한 방송이 넘쳐나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보면 다양한 형식의 음식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비단 티브이 방송 뿐만 아니라 여러 sns 채널을 통해서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니 인간 생존의 필수 요소 중 '식(食)'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서인지, 아니면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으니 더 건강하게, 더 맛있게 즐기고 싶은 욕망에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그런 내용이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식(食)은 분명 인간사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니 어쩌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혹은 현란한 요리 솜씨에 반해 우리는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며칠 전에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을 때였다.


 우리가 시청한 프로그램은 연예인끼리 요리 대결을 해서 뽑힌 사람의 음식이 상품화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머니께선 한 여자 연예인에 급 관심을 보이시며 그 프로를 보자고 하셨다. 평소 그 여자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를 즐겨 보셨기에 그녀는 어머님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배우가 드라마가 아닌 요리 프로에 출연하여 요리를 하고 있으니 어머니로선 그녀의 솜씨가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배우은 노련한 솜씨로 칼질을 해냈다. 요리도 잘했다.


 그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저 연예인은 얼굴도 이쁘고, 요리도 잘하네. 저 사람 남편은 참 좋겠다. 자고로 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요리를 잘하는 여자가 얼굴까지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남편이 요리 잘하는 여자를 좋아할 거란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나에게 한 말도 아닌 저 말에 어찌 되었건 난 기분이 나빴다.


자신 없는 일에는 당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에 기분이 나빴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요리를 잘 한 사람이었다면 저 말에 기분이 나빴을까? 아니. 그랬다면 난 '오~ 요리 좀 하는데' 라며 여유롭게 그 프로를 즐겼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말을 듣고 그 프로 보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는 내 자신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그 여자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으면 요리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자격지심을 느꼈단 말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대부분 다방면에서 능력을 갖춘 모습을 하고 있다. 미혼인 연예인은 "왜 저런 능력이 있으면서 결혼을 아직 안 하고 있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혼인 연예인은 "남편은 참 좋겠다"란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들의 모습은 전체가 아닌 포장된 단편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습을 전체인 양 바라보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나 역시 집에서 된장, 간장, 고추장도 만들면서 나름 요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요리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저런 말씀에까지 기분 나빠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문가의 솜씨는 아닐지라도 평소에 요리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더라면 저 말이 기분 나쁠 리 없다. 그러나 남편 옆에서 요리를 하는 것보다 돕는 일이 더 많이 하고, 그런 모습을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신 탓에 요리에 있어서 만큼은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난 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에, 그래야 남편이 좋아한다는 말에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난 요리를 잘하는 여자가 아니어서...

 그로 인해 남편이 싫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게 평소 어머니의 생각이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여자나 남자 중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요리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솜씨도 없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반드시 요리를 해야 한다 의무 짓는 건 옳지 않다. 물론 부족한 솜씨를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을 시도해 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요리를 여자의 일로 구분 짓고, 여자에게만 요리를 강요하는 일에는 수긍할 수가 없다.



 예전 같았으면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시집살이를 하니 이런 말까지 듣게 되었다며 속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저런 말이 조금 불편할지라도 시집살이를 탓할 만큼은 아니다. 저런 말은 친정 엄마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집살이도 가족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에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마음에 새겨두고 한 번씩 되새김질을 했는데, 최근엔 '친정 엄마와 살았어도 이런 일은 생길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는 나를 본다.


 시집살이를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니 살아볼 만하다. 가족의 일이다 생각하니 이해가 쉽다.


 그렇게 가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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