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도 공든 탑은 무너진다.
공든 탑이 무너졌다
어머니의 말은 무게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거웠다.
"넌 뭐하러 그런 말을 했냐"
"제가요?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전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요"
"너한테 들었다는 사람이 둘씩이나 있는데 어디서 우기냐"
"아니요. 정말로 기억이 없어서 그래요. 그 사람이 그래요. 제가 그랬다고"
"넌 젊은 사람이 어째 그렇게 기억력이 없어"
핑퐁 게임도 아니고 던지고 받기가 반복되었다.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기억을 해요. 저한테 들었다고 말한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요"
"몰라도 된다. 내 말의 요지는 집안일을 밖으로 옮기지 말라는 거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전 정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한테 물어볼게요"
"어째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여기서 한 말을 또 옮기겠다고?"
"옮기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죠"
"됐다. 그만 하자. 그리고 그 사람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다"
"네?"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묘한 어감의 말 한마디가 내 입을 막았다. 그 사람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 나는. 한사코 아니라고 반박하는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인가. 공든 탑이 무너졌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핏대를 세우며 완강하게 말하는 태도에 내가 말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중에 내가 한 말이라는 게 밝혀지면 얼마나 민망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난 정말 아니었다. 그럼에도 홀가분하지가 않았다. 누군가를 보는 것이,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진 게 두려웠다.
궁금했다.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그 사람 대체 누굴까?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누군가의 믿음 충만한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이 말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그의 말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현재의 고단함은 미래가 다 보장해 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슬픔은 현실의 감정이 지배한다. 미래를 위해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감정이란 건 그의 말처럼 단순하게 흐르지 않는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버라이어티 하게 드러난다. 나이가 들었다고 감정이 온순해지거나 두루뭉술하게 다듬어지지도 않는다.
지금의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 잊힐 것이다. 그렇다고 감정을 만들어낸 일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일은 언제고 미래의 어느 순간 불쑥 얼굴을 내밀어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때는 부디 지금보다 더 다듬어진 감정이 다가와 더이상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듯 한 번 뱉은 말 또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래서 내 귀에 저장되어버린 어머니의 말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