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Oct 08. 2019

슬픔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난 빨간색.

그림책 <무릎 딱지>를 소개하며

슬픔은 무슨 색일까요? 무릎 딱지를 보면 슬픔은 빨간 색일 거 같습니다.

상처나면 나타나는 빨간색. 아프면 나타나는 빨간색. 그래서 슬픔은 빨간색일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무릎 딱지>는 슬픔이 묻어있는 그림책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이지요.


책에는 죽음과 마주 선 어른(아빠)과 아이(아들)등장합니다.

죽음 앞에 선 아이가 주인공인데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대상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인데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마치 까뮈의 '이방인'을 연상시키는 이 첫 문구는 너무나 강렬해서 슬펐습니다.

까뮈를 존경했를 것 같은 작가가 그를 오마주 하기 위해 이런 문구를 넣은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게 한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안 것은 아침이었습니다. 엄마는 어젯밤에 죽었지만 아이는 엄마가 죽어가는 그 시간에 잠을 잤으니까요.


아이는 어제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안아 주지도 못할 거고, 영영 떠나게 될 거라는 엄마의 말을요.


그때 아이는 엄마에게 소리칩니다.

난 이제 엄마 아들이 아니라고, 이렇게 가 버릴거면 나를 낳지 말지, 뭐 하러 낳았느냐고.


아이는 엄마의 말을 온 몸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엄마는 떠났습니다.

엄마의 죽음을 알았을 때 아이는 못 들은 척 외면합니다. 절대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엄마는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엄마가 없는 집은 엉망입니다. 아빠는 아이의 식성도 모릅니다. 빵은 지그재그로 꿀을 발라 반으로 접어 먹어야 하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그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죽어서 아빠는 빵에 일자로 꿀을 발라 버립니다.

아이는 아빠보다 그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죽은 엄마가  더 밉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위로해 주기로 합니다. 아빠가 자주 우는 것은 보기 싫기 때문에.

러나 사실은 아이가 더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엄마의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고, 시간이 지나 엄마를 잊게 될 날이 올까봐 무섭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게 모든 문을 꼭꼭 닫습니다.

또,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도 다뭅니다. 하지만 코는 그냥 놔두지요. 숨은 쉬어야 하니까요.

아이의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장면이 장난스럽게 표현되었지만 엄마를 잊지 않으려는 아이의  절실함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아이는 아프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를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단다."


그래서 무릎에 상처가 나 아파도 기분은 좋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딱지가 앉으면 손톱으로 상처를 긁어 피를 냅니다 . 피가 흐르면 또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외할머니가 방문하면서 아이의 일상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외할머니는 모든 방의 창문을 열어버립니다. 엄마 냄새가 다 빠져나가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아이는 절망에 빠져 몸부림칩니다.

그때 외할머니께서 아이의 손을 가슴에 올리며 말해 줍니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떠나지 않아."


이제 아이는 엄마를 잊지 않을 비밀을 알게 됩니다.


외할머니가 떠난 후 집안에서는 다시 커피 냄새가 나고, 음악 소리도 들립니다.

서서히 아빠와 아이는 일상 생활에 적응해 갑니다.

저녁에 아이는 무릎 딱지가 사라진 자리에 새살이  돋아난 것을 발견합니다. 상처가 없으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이는 울지 않습니다.

엄마가 어디에서 자기를 지키고 있는지 알았으니까요. 아이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편안하게 잠이 듭니다.


아빠 앞에서 엄마라는 말도 꺼내지 않은 아이가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는 엄마라는 말을 꺼내면 아빠가 슬퍼할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태연하게 아빠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넓은 그 아이도 결국 아이였습니다. 냄새를 가두고,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면서까지 엄마를 기억하려고 하는 아직은 어린 아이.


그 아이는 가슴 속에 엄마를 간직한 채 가슴이 뛰는 한 엄마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요. 하지만  남은 시간을 엄마와의  짧은 추억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아이가 저에겐 이렇게 빨간 슬픔으로 남습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무릎 딱지>를 소개했습니다.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게으른 사람에겐 가난이 병정처럼 몰려온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