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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23. 2019

게으른 사람에겐 가난이 병정처럼 몰려온다고요?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살았지만 시집살이는 없었다. 두 분 모두 좋은 분이셨고, 우리는 서로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행동했기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11월에 결혼을 하여 시댁에서 맞은 첫겨울,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시어머니께선 안방으로 날 불러 이불속에 손발을 넣게 한 후 몸을 녹이게 하셨다. 그리고 손수 차린 저녁도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난 며칠 동안 이 집안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보상처럼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는 내게 부엌일을 맡기셨다. 아침마다 어머님께서 준비해 두신 음식을 차리고, 보조 역할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던 나였는데, 그런 나의 무엇을 믿고 어머니께선 부엌을 맡긴다고 하신 것인지...


어머님 말씀은 이러하셨다.


"한 집안의 부엌은 한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한다. 여자 둘이 부엌을 차지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나와 너 둘 중 한 사람이 부엌을 맡아야 하는데 젊은 네가 부엌을 맡는 것이 옳다."


어머님 말씀이 맞다 하더라도 난 그 결정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에 힘이 빠져 난 결국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동안 어머니께서는 내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준비에 본인의 몸단장까지 하셨다고 한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님께선 평생 아버님보다 먼저 주무신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아침이면 아버님보다 먼저 일어나 머리 손질이며 화장을 하셨단다. 아버님께 흐트러진 모습 보이고 싶지 않으셨기에.

'아~, 이건 또 무슨 소리...'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부란 그 어떤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사이가 아닌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새벽 단장이라니. 숨 막히는 일이다. 따르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남편은 어머님의 그런 모습을 존경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자신의 몸단장에 아침 준비까지 하셔야 하는 어머님의 아침은 바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머님께선 부엌일에서 해방되고 싶으신 거다. 또 며느리를 얻었으니 쉬고 싶으신 맘도 있으신 거다.


난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하고 다음 날부터 아침 준비를 위해 좀 더 일찍 일어났다. 직장도 가야 했기에 대강 준비를 한 후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내가 맡은 첫날의 식사가 늦어졌다. 아버님께선 평소 말씀이 적으시고, 반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셨으나, 식사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것만큼은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일정한 시간에 적당한 양의 식사. 이것이 아버님의 식사법이었다. 그런데 난 그 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시고 아버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게으른 집엔 가난이 병정처럼 몰려온단다"


'헉, 이건 내가 게으름을 피워 식사 시간이 늦어졌다는 말'


"네"

이 한 마디로 나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게으르다고? 그랬구나!

너무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안에 들어와서 난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입버릇처럼 날 보고 게으르다고 말한다. 내가 먼저 나서서 하는 일이 없다고. 그런데 억울하게도 난 남편이 하는 일을 옆에서 다 돕는다. 무슨 일이든 같이 한다. 그러나 먼저 나서서 일을 하지 않으니 난 언제나 게으른 사람이 되고 있다.


이렇듯 결혼후 각인된 나의 첫 이미지는 게으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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