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원

Feat. IRP

by 씨디킴

회사에서는 내가 요청한 퇴직조건을 받아줬다.

대표에게 카톡으로 내용을 보내고

'네'라 대답하라고 했다. 떠나면 그뿐 아닌가.


대표가 내 담당 광고주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단다.

적게는 매체비 30억, 크게는 60억짜리 광고주다.

30억짜리 비딩에 메이저 대행사까지 죽자고 달려드는 요즘.

대홍기획은 벌써부터 그랬고, 제일기획까지 가세해서

중소 광고대행사의 일감마저 쓸어가는 중이다.


00 제약은 그만큼 귀한 광고주다.

그분과는 저번주에 점심식사를 했다.

어떤 광고주보다 감이 좋고, 영민한 분이다.

그도 나를 은근히 좋아했다. 코드가 맞았다.


결과도 좋았다. 이 불경기에 품절 행진이었으니까.

대표는 그에게 좋은 소리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나도 사람이다. 쓴소리를 섞었다. 후회는 없다.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서 퇴직원을 작성했다.

회사에 전할 이야기를 쓰는 란이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쓰려다가 비워뒀다

2008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입사했던 네 번째 직장.

그 사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차도 사고 집도 샀다.

딸깍! 클릭 한 번에 회사 생활이 멈췄다.


IRP를 만들기 위해 어플을 깔 참이다.

김부장처럼 말아먹지 말고 절대 빼지 말아야지.

퇴직금은 없는 돈이다.

어제는 늘 다니던 회사 뒷산에 올랐다.

수천번 오르내리던 내 '살 사라진 산'

갑자기 오른 기온에 몇 번 미끄럼을 탔지만,

아쉬움에 같은 곳을 여러 번 돌았다.


청와대 다음으로 풍수가 좋은 자리.

영하 10도에도 그곳만은 얼지 않았다.


마지막 출근일이 하루 앞이다.

23일 미팅 전까지는 회사에 올 일 없다.


가시방석마저 귀한 오늘이다.

아픈데,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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