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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연 Oct 29. 2024

42.195km를 달리며

나의 달리기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10월 27일 일요일. 7월 말부터 열심히 발을 구르며 준비해 온 춘천 마라톤 풀코스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 지 3개월.

그렇게 기록한 3:59:34라는 기록.

내 달리기 구력도, 내 마라톤 기록도 작고 소중하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출발선에 서고 결승선에 들어오기까지의 경험은 상당히 크게 다가온다.

30년 내 인생에서 결코 느껴보지 못한 벅참.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려 한다.


1. 준비하는 과정



3개월 간 열심히 준비했다. 트레이너로 비치는 것을 약간 포기하고 4kg 정도의 체중을 감량했다. 3개월간 615km를 달렸다.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서 달리는 것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혼자도 뛰고, 책을 읽고 훈련법을 적용해보기도 했다. 잘하는 사람을 좇아 뛰며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러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함께 조깅을 하며 아주 조금 더 일찍 시작한 나의 생각을 공유했다. 인증방을 만들어 함께의 힘과 1만 원의 돈기부여를 믿으며 달리고 있다. 근무하는 킵에도 러닝 크루를 만들어 함께 달리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라 오만한 표현일 수 있지만 달리기가 삶에 점차 스며들고 있다.


행복한 일들이 많았지만 풀코스 직전 참 많은 고난이 있었다. 무리하면 발목과 고관절이 아파왔다. 이거 잡아보겠다고 송파까지 수업받으러도 가봤다. 설상가상 대회 전주 목요일부터 감기가 강하게 왔다. 비타민 c 메가도스, 약, 틈내서 잠 자기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참 힘들었다. 예민해졌고 슬펐다. 3개월이 물거품이 될까 봐. 친해진 달리기가 나에게서 달아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마라톤 당일에 완쾌했다. 불편했던 발목과 고관절도, 심했던 기침과 콧물도 잠잠해졌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내 몸을 조금 더 알게 되기도 했고, 춘천 마라톤 이후에는 조금 더 완만한 곡선으로 내 상승 궤도를 그려야 함을 깨달았다. 과유불급. 과하면 다친다.


2. 42.195km를 달리며


"E조 출발합니다! 5,4,3,2,1 출발!"이라는 신호음과 함께 시작된 마라톤 여정. "출발선에 서면 끝난 거야. 시작하면 그 뒤는 내 노력이 그저 보이는 거라고. 마음 편히 먹어. 열심히 준비했잖아. 즐겨. 이제 시작인데 뭘." 편의점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마라톤 선배님이 해주시는 말씀이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고 그렇게 내 마라톤은 시작했음과 동시에 끝났다.



1-7km까지는 업힐, 다운힐을 반복하는 코스였다. 병목현상, 그리고 코스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달려 오히려 편안하게 달린 7km였다. 흔히 말하듯 '이렇게 달리면 50km도 달리겠어.'라는 느낌이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너무 페이스가 밀린 탓에 그 뒤 약 20km는 빠르게 달렸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옆에는 함께 동반하는 유성샘이 있었고 든든했다. 앞에는 나이가 지긋하셨지만 누구보다 꾸준한 선배님들이 보였다. 그렇게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조금 힘들어질 때쯤 파이팅 소리가 들렸다. 지루해질 때쯤 춘천의 장관이 펼쳐졌다. 그렇게 나는 계속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풀코스는 하프 더하기 하프가 아니다. 30km 달리고 나면 그 뒤가 진짜다.'라는 격언과 같은 말이 있다. 그렇게 나는 27-29km 업힐 구간을 넘어 30km에 도달했다. '오잉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32km 업힐을 넘었고 딱 10km가 남았다. 여기서부터 고통을 통한 배움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근육이 지쳐가는 감각이 급속도로 커졌다. 다리가 나아가는 게 아니라 끌린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케이던스. 케이던스가 떨어지면 내 보폭은 넓어질 것이고 그럼 원래 불편하던 고관절에 더 큰 스트레스가 갈 것이 뻔했다. 페이스는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었지만 힘들어 고개가 들렸다. 마음에서는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냥 잠깐 걸어볼까?' 이제 시작인 것이었다.


그때 나를 구했던 것은 함께 동반한 유성샘의 메시지와 내가 회원님들께 말한 내용들이었다. 유성샘이 5km쯤 남았을 때 말했다. '이거 나머지 뛰려고 지금 우리가 몇 개월 개고생 한 거 아닙니까?' 맞다. 남들보단 적지만 술도 거의 끊고, 체중도 줄이고 하면서 3개월 600km 넘게 달렸다. 그게 너무 아까웠다. "힘들 때 자세 잡으세요. 그게 성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내가 회원님들께 외치는 말이 나에게 꽂혔다. 가장 피로한 순간 결국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음을 인지하는 순간 더 집중해 보는 노력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말. 그 방향을 나에게로 틀었다. 나는 평소 내가 하는 말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운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고 회원님들께 내 몸으로도 입증하는 그런 지도자임을 보여주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41km 지점쯤이 되었다. 마지막 2.195km 정도는 가벼울 줄 알았는데 사점을 이미 넘어서일까 진짜 어느 순간부터는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마침 애인 현경이 보였다. 내가 안 나타나 걱정하며 지켜봐 왔을 현경을 보니 웃음 짓고 싶었다. 아니 사실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3개월 간 누구보다 묵묵히 응원해 준, 서운할 법도 한데 내 달리기를 지지해 준 현경을 보니 포기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현경의 응원을 지나 얼마 남지 않은 거리. 마지막 300m 정도였을까 그때부터 열심히 질주를 했고 나와 유성샘은 3시간 59분 30초대에 42.195km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결승선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참 부담이 많았구나 나. 참 완주하고 싶었구나. 완주를 한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내 준비 과정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었고 벅찼는지를 알게 되었다.


3. 앞으로의 달리기 여정


춘천 마라톤이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내 달리기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다리 상태가 아니다. 하루 이틀 더 두고 본 뒤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가벼운 조깅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더 추가해 보고, 달리기 또한 공부를 조금 더 해 프로그램을 짜서 시행해 보도록 할 예정이다. 맞다. 조깅화도 하나 추가로 구매할 예정이다. 나에 대한 보상이랄까?


이런 여러 생각이 있지만 결국 '꾸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려 한다. 주로에서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빠른 사람들보다 오래 뛴 사람들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분들. 그저 묵묵히 꾸준히 달리며 달리기를 삶에 달라붙게 한 분들. 그런 분들을 통해 '내 달리기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달리기가 나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달리기. 그게 이제 내 달리기 여정 목표의 요약이다.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달리기는 끝난 거니?' 나는 대답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지. 나 평생 달릴 거야!'

그래 이제 시작이다. 내 달리기 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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