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을 읽고 나누며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은 형님과의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다. 독서 모임보단 사실 강의에 가깝다. 내가 경험치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느낌이 강하다.
한 달여만에 전화로나마 만나 진행한 모임의 중심 도서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다. 표지부터 어려워 보이는 책. 그래도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니체의 우상의 황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에 비하면 아주 친절하고 편한 책이었다. (그래도 어려워 목표치까지 못 읽은 것이 약간의 함정이다.)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1부부터 2부 초반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잔인했던 신체형의 처벌은 보기에는 약해졌지만 점차 치밀해졌고 정치화되었고 '정신화'되었다고 푸코는 말한다. 물론 이마저도 신체적이라고 표현하지만 말이다. 형님이 간단히 정리해 주신 후반부 내용까지 살펴본다면 이 책의 핵심은 '현대의 사람들은 내재화된 규율에 지배받는다.'라는 것이고 그 실상을 푸코는 폭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규율의 메커니즘의 그물망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형님과 나는 이것을 결혼, 군대, 시험 그리고 계엄령 등을 예시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잔인한 신체형이 교묘한 형벌과 처벌로 바뀐 것과 같이 사람들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재화된 그리고 획일화된 규율이 점차 개별화되고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규율의 메커니즘이 정말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규율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같은 것이 아니라 유연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권력자에게만 규율의 권한이 있는 게 아니라 권력이 분배되고 견제 가능한 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에서, 그리고 조금씩 좇고 있는 철학의 흐름 속에서 '쓸모'를 느꼈다. 철학자들의 고민이 현재에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하면 조금 더 보이는 것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통찰력이 생기고 상업적으로도 대처 가능한 방향들이 철학 공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전제는 꾸준히 공부하며 꾸준히 현재와 엮어보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의 흐름도 보였다. 철학사의 흐름처럼 정수연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듯하다. 고정된 규율에 사로잡혀 있었다. 권력이랄 것을 얻었을 때 획일화된 것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조언했던 기억이 많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조금씩 개별화, 다양화 그리고 유연함을 갖추고는 있는 듯하다. 형벌의 흐름과 비슷해서 신기한 내 인생이다.
다음 달에는 무슨 책을 가지고 만날까? 한 달 동안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삶에 임해야 할까? 어려운 과제들. 그래도 계속된다. 공부와 그것들을 삶에 녹여내려는 노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