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여행

한 시간을 달려 새로운 곳으로

by 운동하는 훈장님

어느 일요일 오후 4시 반. 러닝화와 따뜻한 옷을 챙겨 입는다. 주머니엔 에너지젤과 스마트폰, 귀엔 이어폰을 꽂고 달리기 시작한다. 정해진 것은 '2시간 정도 뛰자.'라는 마음 하나. 어디로 갈지, 어떤 속도로 달릴지 등은 정해두지 않은 채,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나를 내디뎌 본다.


화장실을 가야 할 수 있으니, 그리고 중간에 음료나 물을 사 마셔야 할 수도 있으니 일단 목적지는 한강으로 정해 본다. 홍제천을 지나 한강 길, 좌우 갈림길이 나온다. '망원으로 갈까? 상암으로 갈까?' 상암으로 간다. 이유는 딱히 없다. '하늘 공원에 올라가 볼까?' 하지만 단념한다. 어제 눈 비가 왔으니 흙길이 질척거릴 텐데 그럼 기분이 나쁠 것 같으니까. 계속 한강 길을 달린다.


책, 드라마, 영화 관련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려본다. 처음 듣는 팟캐스트였다. 가는 길엔 양귀자의 [모순]에 관한 내용이 귀에 흐른다. 독서모임에서 읽어봤던 책. '음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이 나왔던 것 같은데..' 되짚어 보며 듣는다. '애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애가 증이고, 증이 애지 않을까?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 온전히 싫어한다는 것이 있을까? 유무상생도 떠오른다. 사실 동전의 양면은 공존한다는 것. 각 면이 다른 한 면의 존재를 비춰준다는 것. 여러 가지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마주하며 달린다. 이래서 달리기를 명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듣다 보니, 그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샌가 [고양 대덕 생태공원]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처음 와보는 곳에 왔다는 설렘이 느껴진다. 해는 지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 중천에 있을 때보다 훨씬 격렬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온 기분. 황홀감이 나에게 찾아온다. '두 발로 45분만 달려도 새로운 곳에서 생소한 감각을 느낄 수 있구나.' 새로운 깨달음이다. 평소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일도 제법 구조가 잘 갖춰져 있고, 일정하길 원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땐 이번처럼 종종 낯섦을 선택하기로 한다. 가성비 좋은 자아 확장인 듯하다. 달리기를 통한 여행은.


돌아오는 길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관해 듣는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에서 외부, 타인으로 시선이 옮겨짐으로 가벼워진 이반 일리치를 통해 생각한다.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것을 돌아보며 뒤돌아선다. 다시 집으로 가야 하니까.


홀로 2시간을 달렸다. 진정 나만의 시간이 있었다. 또 여행을 떠나야지 마음먹는다. 내 두 다리로 한 시간만 달려가보면 새로운 것이, 낯섦이,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있음을 알았으니. 큰 계획 없이, 자유롭게, 가끔은 내달려 멀리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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