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理解)

나부터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by 운동하는 훈장님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독불장군 성향을 가진, 어느 정도 정답을 정해두고 삶을 살아가는 나이기에 더욱더 어려운 과제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노력하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나와 다른 배경을, 나와 다른 시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요즘 부쩍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이 잘 되고 있던 되고 있지 않던 말이다. 다양한 연령층, 국적, 성정체성을 가진 회원님들을 마주해서일까? 낯섦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물론 그 와중에 그들에게 내 생각 그리고 마음의 이해를 강요하고 구걸할 때도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최근 누군가에게 이해를 강요받은 일이 있었다. 철저히 나라는 사람이 배제된 상황에서의 요구. 이해함에 관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그렇기에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지!'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몸이 붕 뜨며,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는 배신감. 그리고 툭 꺼짐을 느낀다. 인간애의 스위치가 툭 꺼진다. 그리고 찾아온 질문


'왜 세상은, 왜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해해 주는 만큼 날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후... 심호흡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만약 위의 시간을 고집하면 나도 같은 사람이 됨을 이내 깨닫는다. 그리고 이해란 '주고받음'을 상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다. 이해함, 귀 기울임을 굳이 되돌려 받을 필요는 없다. 이후 생각은 '나'로 흐른다.


'사실 내가 날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토록 괴로운 것이 아닐까?'


자주 날 돌이켜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 스스로를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문득 깨닫는다. 나를 소홀히 하다 보니 찾아온 고갈감이 어느샌가 이해의 주고받음을 강요하고 있는 듯했다.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나라는 존재를 먼저 이해하고, 관심의 기울기를 두는 것이 먼저였던 것이다.


'수연아 너의 하루는 어때? 오늘 기분은? 너의 꿈은 뭐야?'


조금은 치근덕대는 느낌이더라도 지금부터 물어보고자 한다. 세계를 이해하기 전 나부터 궁금해하고 이해하기로 한다. 이해의 주고받음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이해하기를 노력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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