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커피가 식기 전까지

호치민의 일요일 아침,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시간

by 장헌

일요일이다. 8시30분. 호치민의 아침 온도는 23도다. 숙소 근처의 자주 가는 카페까지 걷는다. 이면도로의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길가 방향으로 내어놓은 의자마다 혼자 또는 가족단위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한가한 아침을 맞는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일요일 아침의 분위기가 사방에서 느껴진다. 평일에 쌩쌩달리던 오토바이도 마치 기어를 한 단 낮춘 듯 속도를 줄여 달린다. 서울의 일요일은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까? 떠올려본다.


골목을 지나오면 보행기를 탄 아이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눈에 바로 들어온다. 더운 여름과 선선한 여름으로만 구분되는 연중 '늘 푸름' 도시에서 시간의 경과는 새로 지어지고 완공되는 고층건물들로만 확인할 수 있다. 국가의 중위 연령도 33.4세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이 46세라고 하니 이 나라의 평균 연령은 아주 젊다. 그러니 어딜가나 열살이상 차이 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카페에 도착하여 에그 커피를 주문한다. 작은 커피잔에 담긴 커피가 고동색의 작은 세라믹 워머위에 올려져 있다. 먼저 중앙의 노란 크림을 살짝 떠먹는다. 부드러운 크림과 커피 맛이 느껴지면서 마치 티라미수나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다. 워머의 열로 커피가 조금 더 데워지면 에그 커피의 풍미가 더 느껴진다. 커피가 데워지면서 크림이 더욱 풍부해져 거품처럼 커피 위에 떠 있다. 커피가 조금 더 데워지기 시작하면 스푼으로 크림과 커피를 부드럽게 섞어준다. 한모금씩 입에 넣을때마다 그 부드러움이 다르다. 하지만 워머에서 올라오는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란크림이 열로 익어 버릴 수가 있다.


에그 커피는 달걀 노른자 1개, 연유1~2큰술, 설탕 1/2 작은술, 바닐라 향을 넣고 거품기로 충분히 휘젖어 만든다고 한다. 여기에 핀 드리퍼로 진하게 내린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위에 에그 크림을 올려 완성한다. 진하고 쓴맛과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지 베트남 커피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과 만나 부드럽게 중화되는 듯 하다. 이전에 하노이의 에그 커피 전문점에서는 따뜻한 물이 담긴 컵에 담아 서빙을 해주었다. 에그커피는 1940년대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프랑스 라떼인 카페올레에 우유대신 계른의 노른자를 활용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노이에서 시작되었지만 호치민에서도 에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전문점과 카페가 많다.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신다. 어제 들어온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것 또한 선택의 문제로 보인다. 갖고 갈 것인가? 떨어버릴 것인가? 감정에도 유효기간을 붙여놓고 관리해야 할지, 애도하며 사라지는 뒷모습까지 바라봐야 할까? 내 안의 새로 마주한 문제는 늘 버겁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호치민의 눈부신 태양빛처럼 문제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모양과 색깔, 패턴, 문제가 지나온 경로, 공간들의 냄새까지도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호흡을 할 때마다 가슴에 눌린 묵직함이 함께 느껴진다.


살면서 가끔씩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예기치 않은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때가 있다. 매번 쉽지 않다. 나이를 먹는 다고 쉬워지지도 않는다. 다만 달라진것이 있다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현실의 맥락으로 제대로 바라본다. 나와 대화하고, 상대에게 내 진심이 가 닿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전달한다. 왜 눈물이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지, 잠 들 수 없는 지, 왜 통증이 쉽게 가라 않지 않는지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위로하고 그 진심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늘 언어는 마음을 담아내는데 부족하다. 몇 개의 감정은 뭉뚱그려져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몇 개는 상대의 심장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무언가를 완전히 극복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상처는 흉터로, 이야기로 남는다. 다시 유사한 상황을 만나기만 해도 몸은 자동적으로 움찔한다. 다만 마음을 뚫고 스며든 층층의 따뜻함, 각별히 부드러운 위안과 진심 너머에 '내가 발견한 의미'는 상처보다 더 오래, 더 견고하게 살아남는다. 그리고 변형되어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


옆 테이블에 혼자 앉은 베트남 여성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카페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콧소리로 흥얼거린다. 카페 옆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에는 붉은 꽃들이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어 뻗어져 나와 있다. 벽을 타고 길게 내려오는 식물들은 그 끝이 어디에 가 닿을지도 모를만큼 자라있다. 꽃으로 피어나거나 줄기가 되어 뻗어 나가는 일, 그 모두가 오늘을 살아내는 힘의 증거처럼 보인다.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아직 도달하지 않은 나의 여정을 나아간다. 에그 커피의 크림처럼 생각은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의 생활을 위로하는 로부스타처럼 삶이 더 진한 풍미를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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