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통역사

예약과 예약사이

by 양명순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에이전시에 등록을 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일이 내게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등록한 에이전시 포털사이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다고 올라오면 내가 가겠다고 그야말로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 그 일을 채와야 한다.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이고 모든 게 온라인이라고, 아무래도 민첩성이 떨어져 가는 내겐 불리하다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재택근무까지 포함해 온라인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사는 아이들에게 투덜거린다. 다행히 집순이 체질인 나는 아직은 전화로 일을 제공받는 전화통역이나 화상통역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집에서 책상과 냉장고와 커피머신을 오가며 일을 하는 여유도 좋다.


예약과 예약사이를 다니다 보면 시간에 쫓겨 과속도 하고 끼니를 굶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시간이 남는다. 즐겁다. 동선이 맞으면 잠깐 집에 들러 짬을 누리다 나가기도 하고, 차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지만 살짝 설레는 계획은 다음 예약장소에 미리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며 걸을 수 있을 때이다. 예쁜 카페는 요즘 열에 아홉은 우리 동포가 운영하고 있다. 편히 들어가 플랫와이트 주세요 하고 앉는다. 골동품가게나 중고물품가게가 있으면 좋아라 들어가 구경하지만 그래도 제일 반가운 건 도서관이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구경을 좋아하고 도서관이라면 특유의 그 냄새까지도 좋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공공도서관에는 한국어책이 있고 점점 그 권수가 많아지고 신간서적도 늘고 있다. 반갑다. 잠깐 앉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든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책이든 들척이며 한숨 돌리고 다음 예약장소로 향한다.


얼마 전 다녀온 뉴욕여행에서도 나의 베이스캠프는 뉴욕 공립도서관이었다. 특히 42번가에 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그 도서관은 커피도 적절한 가격에 딱 맛있었고 화장실도 있으며 고풍스러운 공간에 앉아 몇 자 적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맨해튼 중심에 있으니 베이스캠프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나의 뉴욕여행은 매일 도서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으로 잠시 머물렀던 공간의 감동과 기억은 잡을 수 없는 허상이라도 불면 날아가는 게 아니라 모른 체 내버려 두면 먼지처럼 쌓이는 나의 재산이리라. 노년으로 가면서 나의 발에 힘이 되어줄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할 때 몇 권의 책을 반납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가까운 공공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정기적으로 빌려 보시던 아버지. 그렇게 남겨진 책을 반납하러 갔었다. 여기구나 아버지가 때때로 오셔서 책을 골라 빌리고 또 날짜에 맞추어 반납하던 곳이 여기구나. 어린 나이에 홀로 남쪽으로 피난을 와 평생을 실향민으로 사시다가 호주라는 또 다른 낯선 나라에서 노동자로 사시며 같이 고생하던 친구분들과 종종 술을 마시던 아버지였다. 지금도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술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책에서 달래고 싶으셨던 걸까?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닌 책을 빌려 읽으시는 아버지를 그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나를 포함하는 아날로그세대에게 어려운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검색엔진은 어떤가! 의료용어나 법률용어 같은 전문적인 용어까지도 핸드폰 안의 어플을 통해 단박에 검색가능하다. 꿈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줄 알았던 글쓰기를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소박하게 실현하고 있다. 고단한 이민생활을 하며 응모도 해본 적 없는 신춘문예의 시 부분당선소감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적이 있다. 그런 글쓰기가 위로가 될 수 있는 내게 지금의 이 온라인 플랫폼은 위로를 넘어 전진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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