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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03. 2024

집짓기 16주 차

Phase 2. 다음 시작을 위한 준비와 계획

76일 차 2024년 2월 19일 월, 4도/12도, 비

건축주 현장확인 w/감리사
금속공사 계단실측

금주 계획을 논의할 수 있도록 아침 일찍 현장을 둘러보았다. 3층 다용도실 주변으로 보일러와 세탁기, 냉장고 등 대형가전이 오밀조밀 좁은 공간에 배치되다 보니 현장의 고민이 크다. 작업의 어려움도 있지만, 살면서 불편함이 있을까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주셨다. 어떻게 공간을 배치할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니 가전 사이즈로 질문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대체 언제 이렇게들 몸집이 커진 걸까? 내 키보다 커진 타워형 세탁기와 쓸 때는 비좁기만 하더니 꽤 큰 면적을 차지하는 대형냉장고까지, 이 작은 집에 맞는 제품들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가전들이 작아지면 다용도실 보일러 설치 공간이 그나마 나아진다.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보일러를 점검하고 관리하기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된다. 빌트인 냉장고를 검토해 봐야겠다.


금주 중 향후 공정에 대해 논의하고, 주말에는 가전매장을 들러 실제 모델을 확인하고 다용도실 문제해결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3층 주방설계 안과 도면 (김치냉장고 자리에 선반과 수납공간을 만들어 커피 기기를 두는 것이 최초 안)
주말, 매장 방문 후

냉장고와 세탁기는 모델에 관계없이 크기가 동일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알고 나니 당연하다 싶다. 매년 다른 크기의 냉장고가 집에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형냉장고를 들이면 별도의 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아래 사진처럼 앞으로 돌출되는 게 일반적이다. 조금 나온다 생각했으나 빌트인과 비교하니 깊이가 무려 220mm나 차이 난다. 크기가 그냥 줄어들리 없고 이만저만 간소한 게 아니다. 냉장고문에 달린 선반이 일단 없고 지금 막 나왔다는 최신기능들이 적용되지 않는 반면, 가격이 저렴해지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효율등급 마저 낮은 편이다.

좋은 건 단 하나,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 생기는 깔끔함.


집집마다 그렇다 해도, 여긴 직접 짓는 집 아닌가! 대형 냉장고의 깊이를 반영한 벽체로 설계되어 있어서 원하는 냉장고를 넣으면 될 줄 알았으나, 큼직한 냉장고와 비좁은 세탁실, 간소한 냉장고와 덜 답답한 세탁실을 두고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

일반적인 대용량 냉장고 사이즈와 설치공간 (870L, LG전자 홈페이지)
빌트인 냉장고 사이즈와 설치공간 (610L, LG전자 홈페이지)

작은 사이즈의 타워형 세탁기도 고려했으나, (자주 있진 않지만) 이불빨래를 고려하여 세탁기 사이즈는 줄이지 않기로 하고, 빌트인 냉장고를 선택했다. 여태 마다해 온 김치냉장고를 드디어 입주시키니 쓰기에 부족함은 없을 거다. 새벽이면 신선한 야채가 배송되는 대한민국에서 큰 냉장고가 굳이 필요한가.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 기능을 두고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감사히 받아들이자.


화요일 또, 비. 현장휴무



77일 차 2024년 2월 21일 수, 0도/4도

금속팀 현장실측. 에어컨 현장사전조사

명일 : 전기 입선


봄이 곧 올 거 같더니, 정작 현장이 재개할 때가 되어서는 며칠 째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 휴지기가 길어지는 거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다음 일이 가늠이 안 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인 듯하다. 금주 향후 일정을 확인하고 나면 좀 나아지리라.



78일 차 2024년 2월 22일 목, -1도/2도, 눈

현장이슈 협의 w/감리소장, 현장소장, 건축주
내년에 보게 될 겨울풍경을 미리 상상해 보는 기회

올해는 눈이 잦은 거 같다 싶어니, 마지막까지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렸다. 소복이 내린 눈 덕분에 예쁜 풍경을 잠깐 감상하고 서둘러 출장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감리소장님까지 현장에 오셨다. 오늘 내내 현장소장님과 전체적인 마감논의가 진행될 예정이고, 퇴근 후에 함께 내부공간 이슈를 협의하기로 했다.


종일 두 분이 검토한 시공이슈를 현장에서 하나씩 같이 확인했다.

3,4층의 천장라인과 창호높이, 베란다 난간소재와 욕실 도어 등이 주요 논의사항이다.


층마다 천장라인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층고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좁은 공간감을 해소하기 위해 층고를 높이는 것이 목표였으나 생각만큼 높지는 않을 거란 우려와 낙담이 마음속에서 찬바람으로 일었다.

바닥 마감이 아직 되지 않았기에 100mm가량 바닥이 올라오게 되고, 천장 역시 전기배관과 에어컨 설치공간 확보를 하려면 200mm가량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빈 건물은 그나마 시원한 듯 보이지만 마감이 모두 되고 나면 지금과는 차이가 크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지금 집을 리모델링할 때 바닥과 천장을 뜯어낸 다음을 거꾸로 대입해 보면 되니까. 창문 역시 실제 창호가 설치되었을 때와는 꽤 차이가 난다. 그래서, 지금 너무 큰가 싶어도 시야에 걸리지 않고 시원한 창이 되도록 창틀의 높이를 최대한 천장에 가깝게 요청하였다. 주방후드 배관이나 에어컨 설치공간 때문에 천장 일부에 단차가 생기더라도 일단 창은 크게 확보하기로 한다.

3층은 공간감이 중요해서 주방후드를 천장매립형으로 골랐는데 다행히 모델의 높이가 160mm로 짧고 배관도 150mm 정도라 마감높이를 최소화해서 180mm를 넘지 않길 기대해 본다. 작은 집엔 2cm도 크다.


이슈가 된 공간들은 시공 후 실제 공간이 모두 작아서 생기는 문제들로 시공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현장이 너무 좁아서 생긴 이슈라 실제 공간에서 해결방법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들이다.

4층 욕실만 해도 setback로 인해 처음 예상보다 꽤 작아졌다. 욕실에 대한 온갖 로망을 펼쳐낸 공간이라 실망의 크기도 만만치 않았으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집의 크기 때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크게 뚫린 창의 크기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벽 선반 위치를 다시 잡기도 했다.

건물이 섰다 뿐이지 창문이 훤하게 뚫린 공간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해도 지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햇살이 없으면 엄청 추울 거 같은데 창이 너무 많은가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요즘 창호의 힘을 믿어본다.


며칠간 내린 눈과 비로 군데군데 바닥에 물이 남아 덕분에 서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위로는 바람이 휘잉거리고 신발 안으로는 냉기가 일렁인다. 작아진 욕실로 인한 낙담한 마음은 드러내지 않은 채, 일반적인 욕실창보다 커 보이는 폭을 줄여서 벽선반을 옮겨보자는 제안이나, 출입문을 줄이는 솔루션을 거절하는 게 답답하실 법도 한데, 현장소장님, 감리소장님과 함께 끊임없이 대안을 찾고 열심히 논의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내부  식별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순간.

농담처럼 말했지만, 매일 아침저녁 익숙해지는 욕실창과 선반을 보며 오늘을 떠올리는 날이 있을 것이다.

얼얼해진 볼과 시린 발, 그리고 고마움으로 훈훈해진 마음이 별빛처럼 박혀있던 겨울 풍경을.

하나 둘 불이 켜진 저녁 풍경

조소장님과는 동네 단골식당에서 뜨끈한 국밥을 먹으며 나머지 논의를 마무리했다.



79일 차 2024년 2월 23일 금, -1도/6도

창호 실측 및 협의
전기입선
금속계단 샵드로잉 제출 승인

명일 :  주말 휴무 / 월 - 설비배관


샵드로잉(Shop Drawing, 시공상세도) : 공사 현장에서 작업 시 참고하는 세부적인 작업 도면.
현장에 종사하는 시공자가 목적물의 품질확보 또는 안전시공을 할 수 있도록 건설공사의 진행단계별로 요구되는 시공방법과 순서, 목적물을 시공하기 위하여 임시로 필요한 조립용 자재와 그 상세 등을 설계도면에 근거하여 작성하고, (1) 실시설계도면을 기준으로 각 공종별, 형식별 세부사항들이 표현되도록 현장여건을 반영하여 상세하게 작성한다. (2) 각종 구조물의 시공상세도는 현장 여건과 공종별 시공계획을 최대한 반영하여 시공 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작성한다.


도면은 (1) 설계도면(Engineering Drawing) : 설계자에 의해 작성된 도면으로 물량산출 및 내역산출의 기초가 되며, 시공자가 시공도면을 작성할 수 있도록 모든 지침이 표현된 도면 (2) 시공상세도(Shop Drawing), (3) 준공도면(As-Built Drawing) 착공 후, 준공까지 모든 변경사항이 설계도면에 표기된 것으로 준공 후 공사비 정산 및 유지관리에 필요한 도면이 있다. (국토부, '건설공사 시공상세도 작성 지침' 참조)


창호 제작 업체의 실측 작업
전전기 입선 작업

비가 개이면서 창호실측이 드디어 진행되고, 내부계단 제작을 위한 작업도면(샵드로잉)이 나왔다.

오늘은 누림 박대표님과 이소장님, 나날 조소장님과 함께 향후 일정을 검토하였다. 현장이 집 앞이라 자주 만나서 미처 몰랐는데 공사 시작 후 처음으로 가지는 티타임이었다. 모두 첫 번째 단계가 무사히 지난 것에 서로 감사하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획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어느덧 서로 공사현장이 아닌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눌 만큼 조금은 긴장이 늦춰졌다.


예정된 준공일인 8월 10일보다는 한 달가량 당겨질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좋은 소식이 있다. 이제 창호도 달리고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여전히 날씨가 가장 큰 변수라고 한다. 창호는 실측 후 최대 1개월 내 설치가 완료되고 이어서 내부 가벽작업과 설비, 전기통신 입선, 2, 3층 간 금속계단 작업이 진행된다. 내부 작업 후 비계는 4월 말경 철거가 예상되고 5월 경 준공일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비계 해체 후에 가스, 전기, 통신 등 토목공사 신청이 가능하고 작업일이 길진 않지만 관련 기관에 요청하여 진행하다 보니 약 한 달 반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계 철거 후 40일 정도 후 준공)


적정 전기용량 신청도 필요한데 이건 설계사무소(조소장님)가 정리하지만, 전기공사를 위해 소비전력이 높은 가전(인덕션, 에어컨, 다리미, 에어컨 등)은 건축주가 미리 확인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이전 집 공사 때 정리했던 가전 및 가구 리스트 문서를 조소장님과 공유하고 보유제품과 구매(예정)한 자재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서 참고할 수 있게 해 두었다. 당장은 조소장님과 함께 전기배선 작업 전 콘센트 위치를 한번 더 확인해야 한다.

보유 가구 및 가전제품 (좌) / 지급자재 구매현황 목록

건축비 절감을 위해 자재 일부를 직접 구매하는데 수전이 먼저 투입될 듯하다. 대부분 수입품이라 밸브까지 같이 구매해 뒀지만 문제없이 잘 설치될지 아직은 우려가 있다. 주방가구는 지금 사는 주택과 아파트에 설치해 본 경험이 있어서 직접 이케아에 발주할 계획으로, 준공 2개월 전 (마루 작업 전)에 할 수 있다고 하니 4월에 설계하고 5월에 하면 되겠다. 재고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약간 서둘러 챙길 필요가 있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는 별도 전력 인입이 필요하므로 준공 후 신청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비계 정리 후 6월 이후 알아보면 되겠다.


창호가 설치되면 외단열 공사와 외부공사도 같이 진행된다. 외부치장에는 벽돌타일과 함께 콩자갈이 적용되는데 가장 기대되는 것 중 하나이다. 오래된 공법인데 자갈의 컬러나 크기를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성품에서 보기 어려운 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된 건물들에서 종종 보이듯 시간이 지나도 변형 없이 지속될 거란 기대도 있다.

State Library of NSW 외관 (2023.11. 촬영)

골조까지는 한 가지 작업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여러 작업이 한 번에 진행되는 것 같다. 내부공사에는 직접 의사결정할 것들이 훨씬 많아질 거라 벌써부터 마음이 부산스럽다. 지금보다 훨씬 간소한 생활을 하려면 줄여야 할 게 많아질 거라 가져갈 짐을 선별하고 배치 공간을 지정해서 복잡한 고민을 줄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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