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토커라고요?"
기자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간간히 '고소하겠다' 협박을 당하긴 했지만, 실제로 고소가 이어진 건 딱 3번이다. 그중 2번은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그 둘의 사건도 차차 밝히겠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경찰에서 '무혐의'로 수사 종결을 하자 검찰에 보내고, 거기서도 불기소 처분이 나오자 항고하고, 재정신청까지 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걸었던 셈이다.
'고소장'도 아닌 '고발장'으로 작성돼 밑줄을 쫙쫙 긋고, 서울 관악경찰서에 접수된 조악했던 그 고소장에서 나의 죄명은 '온라인 스토킹'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벌률위반 혐의'였다. 내 기사로 사생활 정보가 노출돼 곤란하다는 게 고소장의 주요 내용이었다.
처음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난 MBC '연인' 종영을 기념해 배우 A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다. 주변에 다른 기자들도 몇몇 있었는데 너무 황당해서 "제가 스토킹이요?"라고 소리칠 뻔했다. 기사 때문이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는 게 일반적인데, 맹세코 누군가의 '덕질'은 했지만 스토킹은 한 적은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형사님도 당황하신 듯 "최근에 개정된 온라인 스토킹 처벌법 위반이라는 건데, 저희도 초기라 조사는 좀 해봐야 할 거 같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회사가 있는 지역 경찰서로 이관 요청을 드리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고소장 열람을 신청했다.
고소장을 확인해 보니 날 고소인은 사이버불링으로 논란이 됐던 B씨였다. B씨 때문에 괴롭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여성이 있고, 그 후 여론이 들끓으면서 관련 법률까지 개정됐는데, B씨가 오히려 이 법을 이용해 자신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기자와 유튜버들을 고소하고 다녔던 것. B씨의 악랄함을 알기에 보다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아이러니하게도 B씨는 고인이 생전에 고소한 내용과 관련해 올해 초 모두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어쨌든 추석 연휴 직전 B씨의 고소 건이 법원에서도 "수긍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나왔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데스크에 결정문을 보고하면서 따져보니 사건을 인지한 후 거의 10개월 만이다.
고소라는 게 그렇다.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 고소의 나라가 됐는데, 일단 고소장이 접수되면 B씨의 경우처럼 말이 안 되는 사안도 일단 접수가 되면 수사는 해야 한다. 경찰 내에서 소환 조사 없이도 수사가 종결되기도 하지만, 이 건의 경우 법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통화하셨던 형사님도, 나를 조사하셨던 수사관님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대면 수사가 이뤄졌고, 나는 내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를 짓지 않았다'는 증거를 조목조목 준비해 가야 했다.
사실 이 과정이 가장 괴롭고, 시간 낭비, 행정력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 되는 뻔뻔함을 가진 사람들은 고소장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이미지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B씨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쓴 소장 내용을 문장 단위로 나눠 반박하는 과정은 몇 시간을 훌쩍 넘어간다. 이후 내가 한 말을 수사관님이 잘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각 장마다 도장을 찍으면서 확인하고, 수정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도장을 찍고 수기로 쓰는 방식이다. 사고 친 연예인들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그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면서 '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이해가 됐다.
그 후에도 B씨가 나에게 내용증명 비슷하게 기사 내용에 항의했다는 메일을 보냈다고 추가로 자료를 경찰에 보내왔다고 했다. 보통 기사 내용에 불만이 있다면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고소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보낸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문제는 B씨가 나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없었다는 거다. B씨는 내가 메일을 읽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며 경찰에 관련 이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나는 메일을 받은 적도 없고, 평소에 지메일로 포워딩해 메일을 받고 있어서 상대편에서 나의 메일 확인 유무가 파악이 안 된다. 심지어 메일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시기는 주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해당 주말엔 가족들을 만나러 지방에 내려갔던 시기라 메일에 접속 자체를 안 했다. 이러한 사항들을 다시 정리해 수사관님께 보내면서 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그가 나를 못살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확실하게 뜻을 이뤘다.
어쨌든 그 후 몇 달 후에 검찰로부터 우편물을 송달받았다. 처음엔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줄 알았다. 혐의가 있으니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더해 사건을 검찰로 넘기는 게 기소의견 송치다. 그런데 확인 결과 B씨가 경찰의 무혐의 수사종결에 불만을 품고 검찰에 고소장을 다시 넣은 거였다. 그 후 검사도 '죄가 안된다'며 '불기소처분'을 했는데, 끈질기게 갈 때까지 갔다.
B씨가 이 글을 보고 또 나를 괴롭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행정력 낭비는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기사로는 쓸 수 없지만, 여기서라도 속내를 쏟아붓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