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2025년 공백기에서 배운 것들...

버티는 법 말고, 나를 지키는 법

by Min

거의 1년 만에 다시 쓰는 글이다. 두서없어도 괜찮다. 그냥 지금의 나, 그리고 2025년을 돌아보며 남기는 기록이다.


202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해였다. 직장을 잃고, 사랑을 잃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도 멀어졌다. ILM에서 갑작스럽게 계약이 종료된 후 약 4개월의 공백기가 시작됐고, 그 시간은 체감상 몇 년처럼 길고 고통스러웠다. 인터뷰는 계속 봤지만 결과 없는 기다림이 반복됐고, 기대와 좌절이 쌓이면서 우울감은 점점 깊어졌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기며 많이 자책했다. 2025년의 나는, 나를 가장 많이 미워했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연애도 끝났고, 가치관 차이로 베스트 프렌드와도 손절하게 됐다. 런던에서의 삶이 너무 버거워 잠시 한국에 다녀왔고, 이후 BlueBolt에서 오퍼를 받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파이프라인, 그리고 좋지 않은 상사 운 속에서 다시 일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버텼고, 두 편의 영화 크레딧을 남겼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내가 맡은 일들이 너무 하기 싫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고, 그 안에서 또다시 괴로웠다.


일은 하고 싶은데, 일이 하기 싫은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작년 11월, 다시 ILM으로 돌아갈 기회가 올 거라 기대했지만 그것마저 불발됐다. 나와 같은 시기에 같은 회사를 들어간 동료는 ILM 복귀에 성공했지만, 나는 거절당했다. 그때의 나는 질투도 했고, 왜 나는 안 되는지 수없이 이유를 분석했지만 끝내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시기가 정말 바닥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잃은 상태였다. 나를 잃은 채 세상과 사람들에 휘둘리며 하루하루 버티다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갔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VFX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 말고, 또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좋은 회사에 소속돼 안정적으로 일하고,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고, 멀티태스킹도 잘 못한다. 회사에서 스몰톡을 하는 것도 어렵고, 낯가림이 심해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저기 둥글둥글하게 잘 지내는 동료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그때부터 비교 지옥이 시작됐다. 회사 내 정치질을 하는 사수를 보면서, 또 그 라인에 줄 서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아부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부하는 사람들이 승진하고, 부서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소비되는 모습을 보며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에서 일하며 나 혼자 한국인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지역별 악센트가 강하고,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영어 속에서 나는 종종 말을 놓쳤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자기 할 말 하느라 바빴다. 다행히 소수의 사람들과는 잘 지냈고, 그분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동료와의 관계는 업무 소통 정도면 충분하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스몰톡과 친밀함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내 사람, 아닌 사람을 나누고 팀을 만들고 배제하는 모습들을 보며 정이 많이 떨어졌다.


대기업이라서 더 그런가 싶어 회사를 나오고, 4개월의 공백을 가진 뒤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그전에 사람에게 많이 데인 상태라, 그 작은 회사에서도 스몰톡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벽이 꽤 높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내 옆자리에 앉은 주니어 컴포지터 친구가 정말 친절했고, 편하게 다가와 줘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빌런도 늘 존재한다. 내가 만난 빌런은 바로 내 직속 상사였다. 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 올라갔고, 더 이상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눈치도 없고, 할 말과 못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널 비난하는 건 아닌데…”라며 결국 대놓고 비난하는 말들.

꼰대 마인드, 나르시시즘, 뒤끝까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 1위다. 특정 아티스트에게는 편애하고, 나에게는 은근히 긁는 스타일. 왜 그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 해도, 그 상사가 있다면 가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또다시 공백기다. 회사 생활은 가까이서 보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단기 계약이고 최소 2주에서 길어야 3개월이다. 나는 이 공백을 우울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에 몰입할 게 필요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경험들, VFX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릴스를 만들어 올렸다.


처음엔 릴스 하나 만드는데 하루가 걸렸지만, 점점 더 잘 만들고 싶어졌고 더 소통하고 싶어졌다. 최근에는 라이브도 켜고, 뉴스레터도 만들어서 나의 찐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이 구독자들과 팔로워들 덕분에 멘털적으로 많이 회복됐다. 사람의 상처는 결국 다른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말이 이런 순간에 쓰이는 것 같다.


또한 Access VFX 커뮤니티에서 학생 두 명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었다.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고민도 했다. 나는 늘 내 능력이 애매하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이 애매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내가 힘들 때마다 찾아보는 유튜버 ‘드로우 앤드류’님의 영상을 보며 많은 위로와 인사이트를 얻었고, 그걸 내 삶에 대입해 보다가 ‘이키가이’를 알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의 인스타 계정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2025년 12월 중순, 인스타그램 compmin101을 시작했다. 약 6주 만에 팔로워는 1K를 넘었고, 포트폴리오·인터뷰·이메일 관련 정보 공유가 실제 문의와 작은 수익으로 이어졌다. 금액보다도 이 일이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이유는,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Access VFX 멘토로 두 명의 학생과 함께하고 있고, compmin101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즐겁다.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업계는 여전히 어렵지만, 지금은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언젠가 다시 이직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때까지는 여행도 하고, 책도 읽으며 내 마음을 지키고 싶다. 앞으로도 compmin101을 통해 VFX를 더 쉽고, 더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간을, 작년처럼 아프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Compmin 101 뉴스레터: https://linktr.ee/compminl


keyword
작가의 이전글7장. 내 삶의 변화 & 실무에서의 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