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적용되는 '존엄'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예이르 리페스타드

by sue

요즘은 포털 사이트를 살펴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참혹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돈 때문에 가족을 죽이고,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라는 이유로 안전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한다. 기업은 권리를 주장하는 근로자들을 무차별하게 탄압하며, 사적인 이익을 위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이처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범죄자나 악덕 기업 변호를 맡는 이들을 '돈에 눈먼 자'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변호사는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권' 변호사나 '노동' 변호사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인 브레이비크를 변호한 리페스타드의『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다문화를 혐오하는 브레이비크라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77명의 학생들이 사망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브레이비크가 빠르게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며, 그에게만은 격식을 갖춘 재판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는 모든 범죄자와 동일한 법의 보호를 받았고, 원칙에 따라 판결받았다. 재판장에서 품위를 지킬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본인이 지목한 변호사의 변호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원칙 깨고 법 집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곧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기존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변호한 예이르 리페스타드 바로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책에서 사건을 담당하게 된 계기와 그를 변호하는 1년 동안 느낀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서술한다. 테러리스트 변호를 결정했기에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질문 속에서도 그와 노르웨이가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 법치주의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리페스타드는 왜 그리고 어떻게 '테러리스트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었을까?


#1. '법'에 대한 물음

1970년대 아버지의 파산으로 리페스타드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다. 평소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그는 낯선 장정들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어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은 채권을 앞세워 가구와 전자 제품, 소소한 물건들까지 실어 날랐고, 몇 년 뒤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로 하여금 노르웨이가 어떤 법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지, 채권을 앞세운 실력 행사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한다. 다시는 무방비로 당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변호사라는 꿈의 불씨가 되었다.


#2. 죽마고우의 테러

1982년 오슬로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다. 젊은 여성 한 명이 사망한 이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은 리페스타드의 죽마고우였다. 열여섯 살 때 함께 손잡고 여행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친구가 돈 때문에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리페스타드는 범죄자가 태생부터 다른 짐승이 아닌 내 주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는 범죄 자체에 대한 분노를 넘어 범죄자를 만드는 사회적 배경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그는 2011년 브레이비크를 만났을 때 '그가 왜 테러리스트가 됐을까'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3. 생명에 대한 경외

리페스타에게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해 살아가는 레베카라는 딸이 있다. 그는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는 딸을 통해 충만한 행복과 생명의 절대적 소중함을 매 순간 느낀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는 77명의 생명을 파괴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파괴될 수 없는 한 생명이기도 하다. 브레이비크의 범죄에 대해 진술 할 때 그는 감정적인 중심을 지키기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그를 지켰다. 테러리스트를 한 생명으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해 주는 일이 곧 범인이 말살했던 생명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극우주의자의 다문화 혐오로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노르웨이 정부와 시민들의 태도는 분노와 추모 그 이상이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총리는 사건에 대한 연설에서 노르웨이가 증오에 사랑으로 답할 것이며, 더 많은 민주주의, 개방, 인도주의를 이행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들이 파괴하고자 하는 것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한다. 테러 위협을 줄이기 위해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초동 대응 강화를 위해 경찰을 추가 배치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로부터 다른 수감자과 동등하게 학습권을 보장받아 2015년 그는 오슬로 대학 정치학 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2016년 4월 브레이비크는 교도소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에도 법원은 '국가는 테러범이나 살인자에게도 비인간적, 모멸적 대우를 금지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라는 이유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결국 2017년 3월 최고법원 재판에서 브레이비크가 패소했지만, 이는 노르웨이 사회가 한결같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그를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처사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한 발 뒤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은 함께 슬퍼하고 분노만 하면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하고,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파괴하려는 우리들의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


리페스타드가 브레이비크 변호를 맡을지 고민할 때 간호사였던 그의 부인이 말했다.

"병원에 피를 흘리는 환자가 오면 아무도 그가 범죄자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고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 범인을 변호하는 일이 당신의 직업이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단단한 신념 위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변호사는 범인을 변호한다. 판사는 엄중한 법의 잣대로 마땅히 받아야 하는 판결을 내리고, 기자는 정확한 사실 전달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도록 돕는다. 정치인은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입법을 시행한다. 이렇게 사회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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