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대학생 때만 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들을 보면 동정심이 아닌 분노가 올라온다.
12시간 일해도 월 150만 원을 못 버는 젊은이들
가녀린 팔목으로 폐지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이 '열심히 안 살아서 그렇게 되어버렸다'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약자에 대한 한결같은 폭력에 화가 나고,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에 또 한 번 화가 난다. 힘 없이 다른 이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시험지를 받았는데 단 한 문제에도 답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것 같다. 나는 이럴 때 책을 읽는다. 말하고 싶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를 때면 나처럼 세상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다. 고민 끝에 담아낸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보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회에 이토록 깊은 애정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다. 이들과 함께라면 오늘보다 내일이,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아질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달까.
근래에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준 책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적 관계가 개인의 몸에 남기는 상처가 무엇인지, 그래서 상처 받는 이들을 줄이려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백혈병의 원인이 '비정상적인 백혈구 증대' 임을 밝히는 것이 의학의 영역이라면, 어떤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주로 걸리는 병인지, 어떠한 일을 하고 누구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이 병에 쉽게 노출되는지 밝히는 것은 사회역학의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역을 사람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프게 하는 사회적 요소를 분석하여 모든 이들이 적어도 건강하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1. 불평등한 여름, 국가의 역할을 묻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1995년 7월 한 달간 시카고에서 7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자들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사망자 중 339명과 비교대상자 339명을 포함하여 678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단순히 질병으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사람들,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이 폭염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3배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에어컨이 있는 시설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사망할 확률이 낮다' , '외부 사회활동을 많이 할수록 사망할 확률이 낮다'라는 결론은 얻었지만, 여기에는 '왜'가 결여되어 있었다. 왜 누군가는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고, 왜 누군가는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한 차원 안으로 들어가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사회학 교수 에릭 클리넨버그는 이 부분을 보충하여『폭염: 시카고 참사에 대한 사회적 부검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을 출판했다. 그에 따르면 시카고 서부에 있는 두 지역 론데일 북부와 남부를 놓고 봤을 때, 1995년 7월 폭염으로 북부는 10만 명당 40명, 남부는 10만 명당 4명이 사망했다. 지리적, 경제적으로 비슷한 두 지역에서 10배의 사망률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에 대해 그가 제시한 원인은 바로 '공동체의 와해'였다. 론데일 북부는 비교적 범죄자, 마약 판매상 숫자가 많아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에 외출을 꺼렸다. 그들은 이웃을 믿지 못해 위급한 상황 속에서 도움을 청하지 못했고, 다른 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뜻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1995년 7월 그 와해된 공동체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이 사망했다.
4년 뒤 시카고에는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 찾아왔다. 다양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를 진행한 시카고는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응했다.
우선 에어컨이 작동하는 쿨링센터 65곳을 열고, 센터까지 갈 수 있는 무료 셔틀을 제공했다. 이에 더해 치안이 불안하여 쿨링센터까지 오지 못하는 3만 명의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했다. 1차적인 연구에 만족하여 공동체 와해에 대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문 서비스는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자, 시민 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이를 바탕으로 한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1995년 700명보다 훨씬 적은 110명으로 사망자 숫자가 감소했다.
#2. 존재가 부정당할 때 몸은 아프다.
사회가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아프다. 실제 미국에서 '동성결혼 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주에 거주하는 성소주자들은 해당 법안 통과 전에 비해 불안장애 유병률이 4.2배 증가했고, 정동장애 유병률이 1.67배 증가했다. 반면 동성 결혼을 금지하지 않는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는 불안장애 유병률이 1.54배 증가했고, 정동장애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 소수자들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제도 아래 있을 때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크다. 이것이 소수자까지 포용하는 사회적 제도가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이 책에서는 제도 외에 소수자에게 질병을 권하는 것이 또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사람들의 낙인과 차별이다.
'대장암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에이즈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질병의 발생을 줄이려면 질병을 야기하는 위험 요인을 발견하고, 그 위험 요인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책에 나온 예를 사용하여 이야기해 보면 50세 이상의 고연령과 흡연이 대장암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라고 할 때 '대장암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물음이 생긴다. 물음에 대한 답은 각 위험에 따라 정의된다. 위험 요인 중에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예컨데 흡연을 줄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지만, 고연령은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동성애는 주어진 상황으로 타인이 줄이거나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라는 점에서 대장암 위험 요인 중 흡연보다 나이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에이즈 발병률이 높다는 이유로 '동성애가 에이즈 원인이다'라는 가설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것은 '노령이 대장암의 원인이다'라는 문장을 되뇌는 것과 같다.
'동성애가 에이즈 원인이다'가설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만 강화시킬 뿐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강력해진 낙인은 상처를 악화시킨다. 실제 사회적 낙인 자체가 에이즈 유병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 세계 115개국 3,340명의 남성 동성애자 대상 연구에서 성적 낙인이 높은 나라 국민일수록 윤활제와 콘돔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에이즈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회적인 낙인이 에이즈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증가시킨 것이다.
작가는 '50세 이상 고연령의 대장암 발생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대야 하는가?'처럼 '남성 동성애자의 에이즈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성애 자체를 질병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 소수자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던질 때 중심을 잡고 정확한 위험인자를 찾아낼 수 있다.
깊은 곳에 있는 위험 인자를 찾아내고, 함께 그 본질부터 고쳐나갈 때 세상은 한 발 더 앞으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