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구해볼까?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
2018년 7년간 이어진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을 나왔다. 집은 X와이프 명의로 된 집이었기에 그저 내 짐을 싸서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던 결혼생활.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챙겨 일단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대학시절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 생활로 돌아간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불편한 관계가 없다는 것에 만족했다.
일단 고시원에 들어간 나는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늘렸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생겨났던 마이너스 통장은 그냥 나의 몫이었고, 나는 그 한도를 늘릴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늘어난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만큼의 보증금으로 원룸을 구했다. 어디든 고시원보다는 나을 거라는 마음으로 이사한 원룸. 정말 좁은 평수였지만 신축이어서 깨끗했고 나만의 오롯한 공간이었기에 만족했다.
그렇게 원룸에서 직장생활을 한 2년. 이제는 짐도 늘어났고,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와 집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찾게 되었다. 그때 직장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전세대출을 받아보라는 조언을 들었고, 나는 그 조언에 따라 전셋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내일 만날까요?"
나에게 익숙한 인터넷으로 전셋집들을 찾아보았다. 부동산 어플이라던지 부동산 사이트들이 잘 나와있어 내가 원하는 지역과 금액만 넣으면 집들이 착착착 정렬되어 나왔다. 그 모든 집들이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묘한 기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중에서 나는 마음에 드는 집 몇 채를 정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한 공인중개사를 만나게 되었다.
공인중개사는 경차를 타고 나타났는데 커다랗게 부동산 이름이 차량에 라벨링 되어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게 알록달록한 컬러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동산 홍보물. 오히려 그런 차량을 보니 이상하게 더 전문적으로 보였고 믿음이 갔다. 공인중개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저희는 빨간 벽돌집처럼 오래된 집들은 소개해드리지 않아요. 깨끗한 신축 위주로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이 전세 구하기에 가장 적기입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만난 공인중개사를 따라 내가 원하는 지역의 여러 신축 빌라들을 함께 보았다.
참, 좋더라.
새로 지어진 깨끗한 건물에 옵션은 모두 풀옵션. 거기에 내가 첫 입주이기 때문에 집은 비워져 있고 넓은 주차장까지, 모든 것이 정말 좋게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만 당시 공인중개사가 나를 데리고 신축 빌라를 가면 그곳 분양 사무실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멍청하게도 그것을 전문적이라 여겼다. 어쨌든 공인중개사는 몇 채의 집을 보여주었고, 그중 가장 나에게 맞는 집을 공인중개사는 추천해주었다. 내가 원하던 7층이었고 뷰도 좋았다. 다만 가격이 내가 원한 금액보다 높았다. 내가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자 공인중개사는 나의 직장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는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내가 주저하자 바로 은행 직원과 통화를 시켜주었다. 통화 속 상대는 자신을 ㅇㅇ은행 대출 담당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얼마 정도의 대출이 가능한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계약하는데 뭐가 문제이신데요?
공인중개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태도로 강압적으로 계약을 권유했다. 대출도 잘 나올 것이니 일단 계약금을 걸고 계약을 하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당시 시기가 11월이었다. 나는 그다음 해 2월에 나갈 집을 찾는 것인데 11월에 계약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였다. 그리고 공인중개사를 만난 당일에 계약을 한다니? 나는 딱 잘라 싫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공인중개사는 조금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이 집 계약하시면 저희가 이사지원금으로 천만 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