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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Sep 11. 2022

내 공간을 가져보려고 2

이사비용이라면...

천 만이라는 돈은 내가 살고 있던 원룸의 보증금이었다. 


공인중개사의 제안에 따라 움직이니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갔다. 바로 분양사무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일단 계약금으로 백만 원을 그 자리에서 송금했고, 간단하게 계약이 완료되었다. 공인중개사는 다시 친절하고 밝은 얼굴로 박수를 치며 좋은 집 좋은 가격에 구하는 것이라고 평가(?) 해 주었다. 나는 계약을 하고 나니 다시금 집이 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게 내가 계약한 집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에어컨은 당연했고,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그리고 세탁기와 건조기까지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집은 원룸에 살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창밖으로는 바로 대로변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보일 야경이 기대되었다. 나는 공인중개사와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는 그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깡통전세 아니야? 

다음날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계약한 건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누군가 물었다. '깡통전세?' 나는 난생처음 듣는 말에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것이라며 한 번 잘 알아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깡통전세에 대해 알아보았고, 이를 다룬 여러 뉴스 클립들과 심층보도 프로들을 시청했다. 그런데 상황이 나랑 정말 비슷했다. 공인중개사가 추천하는 신축 빌라. 이사지원금. 그리고 내가 피해자가 되어 그들과 같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물론 내가 계약을 취소하면 그만일 수도 있었지만 걸어 놓은 계약금이 아까웠고, 나는 아닐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당시 작성한 협의서


하지만 근처 부동산에서 알아본 결과 해당 전세금은 매매 가격과 같았다. 뉴스에서 나온 많은 사례들과 같다는 것이 너무도 확실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백만 원을 손해 보더라도 게약을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입자분께서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 수 있어요! 

나는 공인중개사에게 깡통전세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저 준비한 금액보다 너무 높아서 아무래도 계약을 취소해야겠다고 말했다.(그 집의 관리비는 매달 15만 원이었다 - 주차비 포함) 그러자 공인중개사는 얼마가 부족한지 물어오면서, 그러면 이사비용을 더 챙겨주겠다고 나를 계속 잡았다. 내가 마지막에 들은 이사비용은 천오백만 원이었다. 그 금액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흔들렸다. 어느 전세를 구한다고 해서, 내가 이런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을까? 거기에 깨끗하고 좋은 집, 풀옵션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끝내 그 집에 대한 계약을 파기한 것은 누군가의 이유 없는 친절이 없다는 나의 믿음 때문이었다. 나에게 천오백만 원을 지원해준다면 누군가는 그 이상의 이득을 얻는 것이고, 이는 평범한 전세 계약이 아닌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결국 계약금으로 걸었던 백만 원을 그렇게 날리고 나는 새로 집을 구하기 위해 다른 공인중개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했던 분양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작성한 협의서를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갑자기? 저 백만 원짜리 협의서를 돌려달라고? 나는 이상했다. 어쨌든 내가 날린 백만 원에 대한 증명인데 저걸 돌려줄 필요가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말해서. 그냥 '싫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저 협의서를 가지고 내가 뭔가를 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돌려주는 게 싫었다. 그러자 분양사무소에서는 백만 원 중 삼십만 원을 돌려줄 테니 협의서를 달라고 제안해왔다. 


대체 왜? 


나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싫다고 했다. 혹시라도 나한테 어떤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내가 안 돌려주겠다며 버티자 분양사무소에서는 결국 70만 원을 제안해왔다. 그래서 나는 대체 왜 이걸 돌려받으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분양사무소에서는 어쨌든 저 협의서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그 집을 다른 사람과 계약했을 때 이중계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문제를 삼으면) 사실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날린 줄 알았던 백만 원 중 칠십만 원을 돌려준다고 하니,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그 집과는 결별하고 나는 우습게도 또 다른 공인중개사에게 지금 살고 있는 문제의 깡통전세를 소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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