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만큼 강렬한
해당 리뷰는 2023 성북구 한 책 1차후보도서로 성북문화재단 블로그에 포스팅 되었습니다.
이지 작가의 [나이트 러닝]은 분량에 비해 꽤나 강렬하다.
한 편의 뜨거운 '시'와 마주한 것만 같은 느낌은
페이지가 끝나도 계속 나를 작품 속에 머물게 만든다.
도레미파솔라
그러니까 시는, 나중에 발견됐다.
도레미파솔라까지만 있었던 걸 테다. 시는, 어쩌면 발명일지도 모르지.
아버지 드리의 직장을 유지시키기 위해 나는 그를 밤의 저편으로 내보내고 경비실에 혼자 앉아 있다. 그러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그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이번에 기상 캐스터 공채 합격자로 해당 합격 기사 속 자신의 사진을 학생때의 모습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한밤중 낡은 사진을 들고 나타나 기사를 바꿔 달라는 여자와 온몸을 긁으며 밤의 언덕을 달리는 드리, 그리고 그런 아빠를 대신해서 가짜 경비로 일터를 지키는 나. 셋 중 누가 제일 이상할까 생각했다.
나는 여자에게 아침에 다시 오라하며 돌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침이면 새로운 기사들이 쏟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기사는 밀려날 것이라며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말하는 밀려남은 기사의 정보성 보다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뜻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와 마주하며 지나간 이야기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미처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는데 그 후 연락 두절이거든요.
그제서야 우리는 기상 캐스터의 말도 안되는 요청을 이해하게 되며 사진이 교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밤의 언덕으로 달리기를 위해 나간 드리가 사람의 팔을 두 개 가지고 들어 온 것과도 연계된다. 깨끗하게 잘린 팔 두 개를, 그것도 왼팔 두 개를 전리품처럼 들고 들어 온 드리.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러다 같은 반 친구가 '한쪽 팔을 잘라서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이라는 작문을 해 왔는데 그게 너무 슬프면서도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
... ...
팔이 너무 많이 쌓여 굴러다니는 거야. 묻을까 하다 조금씩 잘 태웠는데 ... ... 오늘은 불이 번졌어. 어떡하지. 나는 이제 감옥에 가게 될까?
팔의 주인은 잔느였다. 그녀는 결혼식 전날에 죽은 드레를 잊지 못해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다. 그런데 문제는 팔이 잘려나간 자리에 다시 팔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잘라낸 왼팔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 태웠는데 그 불이 번져 도시를 덮치고 있었다. 잔느의 왼팔은 말 그대로 그리움을 표한하고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덩어리 채 잘라내면 혹시라도 보고 싶은 사람으로 변해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잘려진 왼팔은 떨어진 그리움 덩어리로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고 왼팔은 다시 자라난다. 오히려 불어난 그리움 덩어리는 묻지도 못하고 하나씩 태워버려야 할 지경인 것이다.
사이렌 소리가 자신을 쫓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잔느는 점점 더 빨라졌다. 나는 너무 벌어지기 전에 따라잡기 위해 다시 잔느를 향해 달렸고, 여자도 달렸다. 드리와 기자도 우리 뒤에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모두 이대로 어떤 행성까지 달려갈 것 같은 밤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쫓아오는 불을 뒤로 둔 채 사람들과 함께 밤을 달린다. 그리고 이러한 달리기 그룹 속에는 사진 기자가 섞여 있다. 그는 연신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오늘이 지나면 밀려 날 이야기. 또다시 잊혀질 기록. 하지만 이 불은 어쩌면 잔느가 잘라낸 그리움 덩어리 왼팔에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정리된 문체와 안정적 스토리를 좋아하는 내게 [나이트 러닝]은 조금 불편한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런 불에 데인 것 같은 강렬한 작품을 만나면 아이러니하게도 시원한 환류감을 느끼기도 한다. 계속 글이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위태. 그 속에 살아 있는 작가 덩어리는 거칠어서 자꾸 눈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