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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May 24. 2023

경우 없는 세계

내가 닮고 싶은 사람


+) 해당 리뷰는 성북문화재단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성북구 한 책 1차 후보도서는,

주민 추천도서 370권 중

성북구립도서관 사서와 한책추진단 운영위원회가 

함께한 선정TF 검토 및 회의를 통해

선정되었습니다.

 - 성북구립도서관



살아가면서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헤매는 시간이 오면

종종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온유 작가의 [경우 없는 세계] 주인공 인수는

삶과 세상의 경계에서 경우를 만난다


주인공이 경우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 시간은 두 번이다.

한 번은 그를 만나기 전,

다른 한 번은 그와 만나고 헤어진 이후.


처음 경우 없는 세계 속에서는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으며,

방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맞이하는

경우 없는 세계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경우의 모습으로

또다른 아이들과 마주한다.


그에게 삶의 기준이 생긴 것이다.




해당 소설은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출한 청소년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또다른 폭력을 행사하게 된 주인공. 하지만 돌아온 건 폐륜아 취급이었으며, 권위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시도때도 없이 방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와 따귀를 때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더이상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집을 나서게 되고 학교와 가정의 밖에서 성연을 만나고 경우를 만난다.


성연과 경우는 무척이나 달랐다. 성연은 감정적이며 남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살폈다. 그런데도 다른 아이들은 성연을 좋아했다. 그에게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런 성연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런 성연을 따라하게 된다.


어느 날 성연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구석에서 나를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씨발, 혓바닥에 모터 달았어? 입 좀 다물어"하고 신경질적으로 뇌까렸다. 그 아이는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뱉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내가 눈을 뜨지 못하고 콜록거리는 것을 즐거워했다.


또다른 아이 경우는 성연과는 반대였다. 항상 타인을 살폈으며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주인공은 그런 경우를 보며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보다는 그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모습에서 항상 아버지가 말하던 이상적인 아이의 형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우는 안전한 공간에서 어른들의 예쁨을 받으며 지냈다. 경우와 지낼수록 나는 궁금했다. 특유의 신중함과 타인을 향한 예의를 과연 누구에게서 배운 것일까. 스스로 터득했다기에 그 태도는 너무도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었다.



인수, 성연, 경우 세 사람은 거리 생활을 떠돌다 '우리집'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우리집'은 노숙자 주영의 집이었지만 그곳에서 가족들이 모두 죽어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주인을 대신해 아이들이 점거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추위를 피하거나 몸을 잠시 눕히고 싶을 때 그곳을 찾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공간은 집이라기 보다는 노숙하는 공원의 실내 형태일 뿐으로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려놓았다. 이러한 공간 속에 경우는 나름의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집'에는 수시로 전기와 가스 공급이 중단된다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집에서 계속 머물기 위해 경우는 아이들에게서 돈을 거둬 가스비를 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기, 박스는 박스끼리 모아서 버리기. 집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간단한 규칙을 정립하기 위해 경우는 애들과 매일 싸워야 했다. 하루만 손을 놓고 있으면 금세 원상복귀되는 집에서 경우는 혼자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렇게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아가게 된 아이들. 하지만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위험부담을 이야기하며 최저시급의 절반만 주며 아이들을 이용하는 어른과의 싸움으로 성연은 소년원에 가게 된다. 그리고 성연은 소년원에서 나오며 또다른 아이들을 '우리집'으로 데리고 들어오고, 여자 아이들도 합류하게 된다. 여자아이들과 소년원 출신 아이들은 팀을 만들어 조건 만남을 가장한 강도짓을 벌이며 이들의 범죄행각은 더욱 확장된다. 다만 경우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찾으며 범죄행각에는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우리집'에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경우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진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경우를 존중하지 않았다. 경우가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전반에 흘렀다. 나는 경우가 주장하는 것이 대부분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이 경우를 막아설 때면 뒤로 물러나 어떠한 의견도 보태지 않았다. 아이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경우가 있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은 중심을 잃었으며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학생 하나가 주인공에게 "느낌이 그래. 그래서 오빠만 일 안 하잖아. 여기서."라고 핀잔을 준 것은 그것이 온몸으로 표출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그자체였다.


육교를 내려온 후 우리는 마법에서 풀린 것처럼 각자가 가야 할 곳으로 흩어졌다. 성연은 영철에게서 연락이 왔다며 가장 먼저 사라졌고 경우는 알바를 하러 갔다. 내가 갈 곳은 '행복한 우리집' 그곳뿐이었다.



아이들은 마법같은 하루를 함께 보낸 후, 제각기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경우 없는 세계'와 마주한다. 그것은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추위 속에 귀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A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호와 만나기 전까지 ... ...




길은 잃을 수도 있기에

길이라고 불리는지도 모른다.



만약 헤매거나 잃지 않는다면

그것은 길이 아닌

당연하게 라거나,

그럴 수 밖에 라고 불리지 않을까?


백온유 작가의 [경우 없는 세계]는

길을 벗어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이는 성장담이기도 하고,

현 사회문제이기도 하며,

우리의 지나 온 시간들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채 살아간다.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도록

꽤나 공들여 문장을 이어 나간다.


이런 작가의 문장 속 다정함과 세심함이

오늘을 헤매는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방황의 시간이 조금은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마지막 장에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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