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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스트 Feb 05. 2023

나의 잃어버린 애장품


나의 애장품이 무얼까? 어릴 때는 문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연필, 색연필, 지우개 그리고 질 좋은 종이들.


성인이 되어서 특별히 애장품 없이 살아온 것 같다.  난 비싼 명품 가방도 보석도 없다. 몇 년 전에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는데 들고나간 것이 나의 컴퓨터와 남편의 기타였다.  별로 훔쳐갈 게 없었던 운 나쁜 좀도둑이었다.  잃어버린 컴퓨터 보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사진들이 없어져 나의 추억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워 하긴 했었다.


사실 난 애장품이 있긴 했었지.       

엄마는 내 나이 20살 엄마 나이 45 살에 돌아가셨다.  암기 말기였던 엄마는 병원에서도 포기하였고 모르핀으로 통증을 이기면서 많이 아파하셨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너무 아파서 우셨고  약 기운에는 평소에 절대 하시 않았던 이상한 얘기도 하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2년을 병마와 싸우다가 추운 겨울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엄마 옆에서  반 정신이 나가 너무 울어서 충혈이 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뭐 하나라도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의 머리카락 세 가닥을 뽑아서 움켜쥐고 내방으로 도망가 작은 상자에 소중하게 옮겨 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평생 간직 할 거야. 머리카락은 썩지 않은다고 했지.  


엄마는 제주도를 무척 가보고 싶어 하셨다. 결국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기에 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모으면 엄마의 머리카락을 들고 제주도 바다에 띄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바쁘게 살아가면서 가끔씩 엄마의 머리카락이 든 상자를  확인했다.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집에서 독립하고 그러다 미국에 취업 이민을 했던 나는 유목민처럼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소름 치면서 깨달았다. 나의 상자. 엄마의 머리카락을 보관했던 상자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유일한 몸의 일부를 잃어버리다니… 제주도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난 결국 나의 애장품을 잃어버렸다.


소중한 엄마의 머리카락을 잃어버렸지만 난 살아 계실 때의 엄마의 모습을 가끔씩 소환한다.      


방에서 기도 하시던 엄마의 모습. 엄마는 매일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부르셨다.  학교를 다녀오면 들리는 찬양소리가 그때는 싫었던 기억이 난다.


삼 남매를 위해 도시락을 싸시던 뒷모습은 늘 힘겨워 보였다.   

아빠와 싸우시고 속상해서 함박눈 내리던 추운 겨울날 새벽 기도를 가시던 뒷모습은 너무나 슬퍼 보였다.     


이북 출신이라서 맛있는 냉면을 드시고 행복해하시던 엄마의 얼굴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는 치마 바람과 거리가 멀었다. 내가 반장이었는데도 엄마는 학교에  인사를 오지 않자 3학년 담임이 화가 나서 “ 수연아, 엄마 보고 꽃 가지고 오시라고 해” 하며 호출을 당했다. 꽃이 아니라 원한 건 봉투였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아랑곳 않고 나를 통해 꽃을 보냈다.  화려하지 않은 겸손한 꽃을 건네어주던 강직한 엄마의 표정은 어린 나이였어도 잊을 수 없다.


수연이는 엄마처럼 살지 말고 꼭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고 세상을 위해 살아라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작은 목소리.   

소환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얼굴은 그녀의 마지막 2년. 뒹굴고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엄마의 모습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결국 나의 애장품은 기도하셨던 엄마에 대한 나의 그리움.   그리고 그녀의 기도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제와 미래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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