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지키지도 못하고 장례도 함께 못한 둘째 딸은 텅 빈 서울에서 아빠가 없는 허전함을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과 감사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햇빛이 따가운 토요일 오후였던 것 같아요. 그날 엄마가 바빴는지 왜 그랬는지 이유는 기억이 안 납니다.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머리를 감겨주시던 날. 강한 손목의 힘으로 머리를 감겨주시고 타올로 제 젖은 머리를 감겨 주셨던 날. 제 머리가 평소보다 빨리 말랐다고 느낄 수 있었던 날. 아빠의 강한 손목에서 당신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앞에서는 표현을 절대 하지 않으셨지만 친척 모임에 가시면 늘 제 자랑을 했었던 아빠. 그때는 어린 나이에도 너무 창피하고 왜 저러실까 생각했지만 아빠의 칭찬은 제 학창 시절동안 부모의 부응하고자 계속 노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비록 뒤에서 하셨지만 쩌렁쩌렁하셨던 큰 목소리의 제 자랑의 해주셨던 아빠. 감사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빠는 공무원 생활을 마치시고 중개사 자격증 준비를 하셨습니다. 저와 같이 공부한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시는 아빠의 뒷모습과 새로운 도전의 아빠가 뿌듯했습니다. 평생 공부의 귀감이 돼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대학 학력고사 점수가 나오지 않았어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학교보다 전공이 중요하다며 제 손을 잡고 영문과 대학 원서를 접수하러 같이 가주신 아빠에게 감사합니다. 어쩜 그때의 전공 선택이 지금의 커리어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중요한 결정에 도움을 주셨던 아빠. 감사합니다.
엄마가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 하시던 일도 그만두시고 최선을 다해 병간호를 하셨던 아빠. 20년 넘는 결혼 생활동안 엄마를 많이 울리셨는데 마지막 1년의 정성과 노력으로 퉁 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아빠의 노고는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빠가 은퇴를 하시고 집에 계실 때, 저의 직장 생활 3년 차 정도 되었을 때에 아빠는 아침마다 제 구두를 닦아 주셨습니다. 늘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싫고 출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했습니다.
시간 지키는 것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아빠. 같이 외출 준비를 할 때면 초 단위로 옆에서 시간을 재실 때 그때는 너무 짜증이 났었습니다. 아빠의 시간 준수 중요성을 늘 가르쳐 주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늘 먼저 와서 기다리는 제가 있게 만드신 아빠. 감사합니다.
아빠. 하늘나라에 가셔서 엄마는 만나셨나요? 엄마는 잘 계시나요? 너무 젊을 때 먼저 가셔서 하늘나라에서 이미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났을지라도 모르겠네요. 엄마는 늙지 않고 늘 45인데 나이가 드신 87살의 아빠를 못 알아보셔도 이해하세요. 솔직히 엄마가 다시 태어나셔도 아빠와는 결혼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입니다.
힘든 세월을 이기시고 고생을 많이 하셨던 아빠. 이 세상을 사시면서 행복하셨나요? 부디 저와 언니 동생이 아빠의 행복이었고 저희가 아빠의 유일하고 값진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값진 인생을 살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삼 남매의 남은 인생을 축복해 주시고 저희가 길을 잃을 때 하늘나라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