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으로 키운 아이가, 욕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곳

'착함' 과 '친절'이 무기가 되는 일터를 꿈꾸며

by 프로스트

대학생이 된 아들과 화상 통화로 소통하는 날은 매주 일요일 저녁이다. 그 시간만 되면 아들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정말 자세히 이야기해 준다. 과묵하지 않은 편이라 참 다행이다. 옆에서 본 것처럼 장면까지 떠올리게 설명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학업이 버겁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도 되지만, 통화를 끊기 전에는 늘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아무튼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만족해요.”


모두가 ‘당연히’ 가야 한다고 말하는 상위권 대학을 내려놓고, 본인이 원했던(학비는 두 배나 비싼) 학교를 선택했으니, 대학 생활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외동아들을 품에 안고 키운 엄마들이 겪는다는 빈둥지 증후군을, 나는 이상하리만큼 거의 느끼지 않는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어제 통화는 좀 달랐다. 아들이 새로 들어간 학교 클럽(동아리) 활동 이야기가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미국 대학에는 ‘비즈니스 프래터니티(Professional Business Fraternity)’ 같은, 네트워크가 강한 조직들이 꽤 있다고 한다. 동문 간 결속이 끈끈하고, 클럽 활동을 통해 인턴 기회까지 이어질 수 있어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200명이 지원했고, 그중 10%인 20명이 최종 멤버가 됐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란다.

“아직 안심하면 안 돼요. 앞으로 두 달이 더 힘들어요. 그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스스로 포기해요.”

아들이 겪고 있다는 ‘챌린지’ 몇 가지는, 솔직히 말해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였다. 신입 멤버 20명을 가운데 앉혀두고 선배들이 두 시간 넘게 고함을 지르며 모욕적인 말을 퍼붓는다고 했다. 그 와중에 리더 중 한 명이 가운데를 걸어 다니며 해야 할 일을 말하면, 신입생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받아 적어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이메일을 보내면, 일부러 “이 이메일은 최악이다” 같은 답장을 돌려준단다. 멘탈을 흔들고, 자존심을 꺾고, 모욕을 견디게 만드는 방식으로.


아들은 그 과정에서 두 번쯤 울었다고 했다. 미팅 때마다 완전한 정장 차림을 갖춰야 하고, 캠퍼스에서 선배를 만났는데 알아보지 못하면 감점이 있다고도 했다. 아들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맷집을 키우는 훈련”이라는 것.


그런데 ‘맷집’이라는 이름으로 욕을 하고 모욕을 준다니. 조금 과장된 훈련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반박이 쉽지 않았다. 내 30년 직장 생활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나 많은 모욕감을 느꼈는지, 얼마나 많은 ‘빌런’들을 만났는지. 어떤 날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도 따라왔다.


혹시 나도 팀장으로 일하며,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모욕을 줬던 적은 없었을까?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귀하게 키웠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보냈더니 욕을 들으며 참는 법을 배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런 모욕적인 사회생활을 아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동시에, 현실은 그런 장면들로 가득하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아들은 말했다.

“엄마, 난 포기 안 해요. 끝까지 해볼게요.” 아들에게 이 장벽은 무너뜨려야 할 거대한 벽이 아니라, 하나씩 깨부수며 나아가는 게임 속 ‘벽돌’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결기를 보며 나는 다시금 유토피아 같은 일터를 꿈꾼다. 모욕을 견디는 맷집이 실력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예의와 친절함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세상을 말이다.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은 너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너를 무디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참는 힘은 필요하지만, 존엄을 잃는 건 훈련이 아니라고.
‘프로’가 된다는 건 누군가를 밟고 서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도 끝까지 해내는 기술이라고.


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4주간의 워크숍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밤이다. 내 아들이 걸어갈 미래에는 ‘독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사람’들이 연대하여 승리하는 시대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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