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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 Dec 31. 2020

보물찾기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사람

팀북투 산문 클럽, 우리가 함께 쓰는 이유


가치를 주는 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다 키순은 내게 하루키의 단편을 하나 들려줬다. 서로에게 100퍼센트였던 남녀가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 정말 행복하게 살자’ 하고 헤어졌는데, 100퍼센트의 상대를 만나는 일이란 인생에서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고. 난 키순이 들려준 짧은 내용을 들었을 뿐인데 그가 말하는 가치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보물찾기 같은 것이 아닐까? 눈 앞에 바로 건네는 것이 아니라, 보물처럼 좋은 무언가를 어딘가 숨겨두고 찾아보라는 것. 보물을 찾는 과정은 즐겁고 흥미진진하니까. 아리송하고 난해해서 더 끌리는 단편의 매력을 키순과의 대화에서 이해하게 됐다.


키순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분명 엄청 똑똑한데 구멍이 아주 크게 나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의 방에는 추리소설과 우주에 관련한 과학서적, 재봉틀이 함께 있다. 이말년의 찐팬이고 술자리에서 맥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에프엑스의 핫썸머를 부른다. 완벽함과 진지함, 오글거림을 참지 못하는 B급 감성 그리고 할머니가 공존하는 이상한 사람. 오늘 밤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며 키순은 ‘달이 정말 밝다’ 하더니 어느 앱을 켜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여주었다. 순간 고양시와 서울시를 연결하는 창릉천 다리 위의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 찍힌 작은 점이 되었다. 자세히 보니 화성이 달 위쪽에서 아주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팀북투 산문 클럽 세 번째 모임. 코코이찌방야 카레를 먹고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주제를 정했다.


오늘은 키순이 우리가 전에 한번 우연히 만났던, 안국역 프릳츠 카페에서 커피 원두와 쿠키, 그래놀라를 사들고 내 방에 와주었다. 내 방에서 그는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에 흥분하면서 그 광경을 목격하러 혼자서 남산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주변에는 신기할 만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매서운 추위, 어두운 밤을 뚫고 별을 보기 위해 혼자 남산에 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키순은 우주와 별에 관심이 많다. 언뜻 4차원인가? 싶을 때도 있다. 키순의 그런 덕후 같음이 좋다. 가끔은 그런 키순 앞에서 빈약한 나의 취향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키순에게 나의 방을 보이는 게 왠지 조금 어색했었나. 하여튼 키순의 그런 덕후 같음은 내가 선망하는 성정이고, 내가 그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키순은 정말 특이해서 궁금한 사람인데, 그의 글도 비슷하다. 우리는 함께 ‘12월’이라는 키워드로 각자의 글을 썼다. 오늘 나누어준 그의 글은 목성과 토성의 근접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과학자 혹은 덕후의 느낌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 이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의 독특한 생각과 시선을 따라가다가 선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이 리셋, 매일이 부활이라는 것’(그것을 깨달아서 저도 다행이에요. 팬입니다. 키순). 키순의 글은 정말 보물찾기 같았다. 달과 월, 월간지의 찰떡 비유에서도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런 게 그가 말한 글이구나! 싶다.


키순의 글을 읽고 함께 잡지를 만들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어렸고 조금 더 순수했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은 매번 힘겨웠지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꽤 뿌듯했다. 나의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것은 큰 감동이다. 내가 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 싶기도 했지만, 최소한 우리는 서로의 독자였고 팬이었다. 선배의 원고를 읽고 그 원고의 팬인 내가 선배에게 직접 후일담을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땐 몰랐지만, 평창동 언덕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팀북투’라는 공동체를 서로의 필요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결성했다. 우리는 다시 서로의 독자가 되었다. 참 오랜만에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생산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키순이 쓴 글을 읽을 때면 나의 방을 보일 때처럼 나의 글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각자가 쓸 수 있는 글이 다르다는 것을 서로 안다. 이런 키순과 함께 팀북투라는 이름에 묻어갈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번의 연애를 통해 나의 경험과 취향이 확장된다고 느꼈다. 그런데 ‘함께 쓰는’ 행위를 통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원래 알던 키순이지만 함께 쓰면서 계속 대화하고, 평소라면 오글거려 하지 이야기하지 못할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을 글로 표현된 형태로 보면서 말이다. 키순의 ‘우주’가 나에게 왔다. 그의 독특함이 나의 메마른 토양에 비옥한 비료가 되어주길!




 팀북투 산문 클럽 

팀북투 산문 클럽은 뭐라도 함께 쓰는 공동체입니다.

"삶에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세요. 따뜻함과 소속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빼면 나머지는 다 거품입니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쓰는 건 홀로 쓰는 것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https://blog.naver.com/timbuktu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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