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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 Jan 08. 2021

야행성 인간의 변론

불안과 영감 사이 그즈음의 새벽에 대하여

팀북투 프로젝트 1.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 <새벽>

팀북투 산문 클럽을 시작하는 첫 프로젝트로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기록합니다. 요즘 수제와 키순의 일상을 구성하는 단어들 중 교집합을 추렸습니다. 간식, 새벽, 요가, 원룸, 유튜브(가나다순). 다섯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자전하는 우리의 일상을 때로는 찌질하게, 때로는 명랑하게, 있는 그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팀북투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얼마큼 멀리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시작점은 지금 여기 우리의 작은방이니까요.


나의 야행성 본능을 직감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난 시골의 작은 사립학교에 다녔다. 입시에 열정이 많았던 선생님들은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 종종 도시 아이들에 대한 낭설을 속삭였다. 하루에 학원을 몇 개를 간다더라, 시험 기간이 아닌 날에도 새벽 서너 시까지 공부한다더라 하는 말로 순진했던 우리의 불안을 자극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잠을 아껴 공부했다. 자정을 지나 가족이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은 가장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한창 공부하다 시곗바늘이 4시를 가리킬 때쯤 나는 다음 날을 위해 자리에 누웠다. 밤잠을 달아나게 한 불안은 학습의 자극제였고, 집중의 원천이었다.


야간 집중력의 효과는 좋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언제나 잠이 쏟아졌던 것이다. 입시가 길어질수록 체력이 떨어졌고 나는 그동안 못 잤던 잠을 자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이 되어도 밤을 새워서 공부한다는 건 이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밤새 놀 수도 없었다. 한창 놀기 좋은 20대 초반에도 나는 자정 무렵, 늦어도 1시에는 잠들었다.


그래도 가끔 영감을 불러내고, 몰입을 높이는 새벽의 기이한 힘을 탄성하고 찬미하며 그 힘을 빌려 글을 썼다. 휴대폰의 알림과 낮의 소음에서 해방된 나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가 만드는 작은 원에 갇히기를 즐겼다. 손에 쥔 펜으로 흩어졌던 시간을 한데 모으고, 빠뜨렸던 생각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낮의 일상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지닌 채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일상을 복기하며 낯선 곳을 여행하는 듯 느꼈다. 그런 새벽은 내게 선물이었다.


일탈에 가깝던 새벽이 일상의 범주로 들어온 건 잡지사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다. 그곳의 사람들은 매달 마감이라는 ‘신성한’ 틀에 삶을 껴 맞추었다. 선배들은 마감에 한번 돌입하면 새벽 2시, 3시가 되어도 사무실에서 태연하게 일을 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그 기이한 광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시스턴트였던 나는 (약간의 자부심과 함께) 괜히 남아 필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했고, 정식 에디터가 된 후엔 나머지 공부를 하는 지진아의 심정으로 사무실에서 해가 뜨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다. 마감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또 마감이었다. 한 달에 열흘 가까이 되는 마감의 굴레 속에서 나와 세상 사이에는 일종의 시차가 생겼다.


잠과의 눈치싸움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다. 너무 피곤해서 눈만 감으면 어디서든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떠오르는 해와 함께 정신이 또렷해졌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과 다시 시작해야 할 다음 마감 같은 것들이 감은 눈꺼풀 뒤에서 아른거렸다. 가끔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한구석에 불편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잠잘 채비를 모두 마친 뒤 ‘얼른 자야 돼’가 아닌 씻기 전 ‘잠들면 안 돼’가 더 쉽게 잠들게 한다는 걸 눈치챈 후부터다. 언젠가 에디터 선배가 내게 ‘너도 약 같은 거 먹니?’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신입 생초짜였던 나는 ‘네? 마약 같은 거요?’ 하고 되물었다. 질문 자체가 굉장히 생소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수많은 편집자가 수면제를 달고 산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알았고, 그 이유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약에는 의지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내 삶에 새벽을 기꺼이 초대했다.

난 이직을 했고 마감에서 해방됐지만 시차 적응에는 실패했다. 새 회사는 비교적 출퇴근이 자유로웠다. 쏟아지는 아침잠을 뿌리치고 스스로 일찍 일어날 동기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갑자기 주어지는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일’이나 밤에 걸려오는 업무 전화, 잦은 야근,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는 재택근무 등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다 핑계다. 나는 스스로 야행성 인간임을 인정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결국 다시 책상에 앉는다. 새벽이 선사하는 몰입의 효과를 마음껏 누린 후 다음 날 다시 후회와 함께 눈을 다.


자발적 백수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제때 잠들지 못한다. 나는 백수의 특권을 남용했다. 내게 주어진 낮 시간을 허투루 쓰고, 열심히 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늘었다. 불면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눈을 감았다가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올라 다시 불을 다. 못다 한 시험공부를 하는 중학생처럼, 이런저런 과목을 들여다본 후에야 잠이 든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심어준 불안이 아직 곁에 있다. 불안을 동기 삼아 경쟁에서 이길 힘을 축적했지만, 또 그 불안이 다시 나의 팔을 흔들어 잠을 깨운다.


선물처럼 주어지던 새벽의 특별성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새벽을 일상에서 지우기로 했다. 커피를 줄이고, 아침 루틴을 만들어주는 서비스의 회원권을 끊었다. 내 집을 놔두고 부모님 집에 들어와 일부러 몇 주간 눈칫밥을 먹으며 아침에 눈뜰 이유를 만들고 있다. 새벽은 죄가 없다. 야행성 인간도 마찬가지다. 야행성 습관을 고치려는 건 학창 시절부터 깊이 내재된 나의 불안을 다독이기 위한 시도다. 불면의 기저에 불안이 있고, 그 밑에 스스로가 성에 차지 않는 마음이 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산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마감을 설정하긴 했지만, 새벽이라는 카드는 이제 아주 가끔씩만 꺼낼 예정이다. 크리스마스가 1년에 딱 하루뿐인 것처럼 특별한 힘은 가끔 써야 비로소 특별해진다.




 팀북투 산문 클럽

https://blog.naver.com/timbuktu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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