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라는 걸 먹어본 때는 막 스무 살이 된 지 얼마 안 될 무렵이었다.
스무디와 바닐라 라테 외에 커피는 마셔본 적도 없는 난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간 그날따라 왠지 친구가 먹는 아메리카노라는 커피 맛이 궁금했다. 물론 친구의 커피를 한 입 먹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가 곧잘 먹는 걸 보니 그렇게 맛이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첫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 날이 나에게 기억이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갔던 카페는 커피 원두를 두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는데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두 가지 원두의 맛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다크 초콜릿이라는 단어였다. 당시 난 그 맛에 대한 설명만 보고는 정말 초콜릿 같은 달콤한 맛이 날 줄 알고 원두를 골랐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시킨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외쳤다.
‘머야, 이거 맛이 왜 이래. 왜 이렇게 써!’
도대체 어디서 초콜릿 맛이 난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나의 모습을 보고 친구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커피가 쓰다니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모르네, 인생의 쓴맛을 알면 커피 맛을 알게 되지.’
자신도 인생의 쓴맛이 무엇인지, 커피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대단한 어른이 된 것 마냥 으쓱대며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훗날 그 친구는 같은 나이 대에선 웬만해서는 경험하기 힘든 쓴맛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시작됐던 커피와의 인연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 썩 커피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인생의 쓴맛을 알아서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30대라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정말 아메리카노를 마시라는 말이 아니다. 커피는 얼마든지 사람의 따른 기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30대라면 이젠 가끔은 혼자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대의 시간은 대체로 우왕좌왕 좌충우돌할 확률이 높다.
20대는 이제 막 사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디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여러 경험들을 해가는 나이이기에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반면 30대는 20대의 우왕좌왕과 좌충우돌한 경험을 기초로 하여 조금씩 새로운 길을 잡아가고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 나이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자신이 그동안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30대라고 해서 더 이상 우왕좌왕 화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좌충우돌할 것이다. 하지만 30대라면 이제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잠깐의 쉼을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고 그런 여유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시기이다.
바둑에서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한 게임을 끝내고 다시 그 순서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디서 실수를 했는지 어떻게 대처를 했어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너무 마음을 쓰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지가 난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에도 의미는 있다. 그리고 이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복기이다.
그러므로 이미 끝난 게임을 두고 복기하는 것처럼 삶의 과거 발자취를 돌아보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이다. 30대에는 이런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30대는 남은 삶의 기준점이 정해지는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대라면 커피 한잔과 함께 나를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를 계획하는 시간과 여유를 가져보자. 그것은 낭비라 아니라 준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