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씩 사람들을 만날 때면 뜬금없이 이렇게 묻곤 한다.
어떻게 살고 싶어요?
예상 밖의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를 보며 '이건 뭐지?'라는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대게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좋을 텐데,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티나, 이번 휴가엔 어디 가지?'
등의 막연한 소망은 가지고 있어도 구체적으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막연한 소망은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하려 하지 않을까? 그것이 너무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려운 철학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먹고살기도 힘든 고달픈 세상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 따윈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저마다 이유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결코 우린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본능에 따라 먹고, 자고, 싸고, 짝짓기 하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돼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철학가도 말하지 않았는가.
배부른 돼지가 될 바엔 배고픈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사실 굳이 혼자 가지고 있어도 될 이런 질문을 내가 사람들에게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적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목적을 찾게 한다느니 구체적인 인생의 고민을 하게 만들 것이라는 등의 거창한 사명은 아니었다. 시작은 그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인생이 너무 막막하고 어려워 혹시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누군가 이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을 해준다면 나도 답을 찾아가는 법을 조금은 더 쉽게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이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을 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웃긴 사실이 하나 있다. 대게 자기 인생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정작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너무나 쉽게 말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고 싶냐를 물을 때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사는 대로 사는 거지.'라고 말했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을 향해 '너는 이렇게 사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마치 자신이 인생의 답과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2. 인생을 알아 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을 알게 된다는 것.
몇 년 전 반영된 꽃보다 누나라는 한 프로그램에서 배우 윤여정 씨는 67살의 인생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60이 되어도 몰라요.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그리고 윤여정 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나도 내 인생은 처음 살아보는 거지. 처음 걷는 인생이니까 모르는 게 맞는 거야.
내 인생이니까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처음 살아보는 내 인생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인생을 모른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다.
이미 승부 결과를 다 아는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승부를 알 수 없는 경기이기에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집중하며 몰입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지만 내가 모르기에 우리는 더욱 내 인생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