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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Jan 10. 2019

5.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라

 20대의 마지막 겨울이 찾아온 어느 날 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재욱아, 아버지가 지금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가고 계신다. 빨리 전주로 내려와’     


 ‘큰일은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현실감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마음은 생각보다 담담하고 차분했다. 그렇게 곧장 서울에서 부랴부랴 아버지가 계시다는 병원으로 내려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급성 심근경색이 찾아왔는데 다행히 당시에 친구분과 함께 계셔서 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시술을 받고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술 도중에 심장이 두 번이나 멈추는 등. 실제론 몇 시간 동안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위기의 순간이었다. 병원 관계자분이 찾아와 


선생님께서는 두 번 사신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천운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황이 심각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올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그렇게 먼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어떤 사람보다도 넓어 보였던 아버지의 등은 한없이 작고 연약해져 있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 매서워 보였던 부리부리 한 눈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여느 아저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눈매가 되어 있었다. 자식들에게 놀란 마음을 감추려 애써 괜찮다며 웃어보지만 얼굴에 드러난 당혹함과 두려움은 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처럼 깊은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다음 휴가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꼭 가까운 곳으로라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한다. 나를 위한 일들을 하고 나를 위한 취미생활을 하며 나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20대는 나를 위한 시간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부모님은 어느새 조금씩 나와 멀어져 간다. 그러다 가정까지 생기는 순간 우린 더욱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20대 동안 어느 정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왔고 아직은 완전한 가정을 이루기 전인 30대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기게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30대가 되는 순간은 베이비붐 세대였던 부모님들 세대가 정년퇴직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30대만큼 시간적으로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기게 적절한 시기가 없다.


 여러분이 최근에 부모님과 이야기한 적은 언제인가?
 아버지의 그리고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혹시 한 번도 부모님의 삶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30대의 시간 부모님과 떠난 여행에서 부모님의 이야기에 귀기우려 보라. 


 우리는 가끔 한 번씩은 ‘나는 내 부모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왜 나의 부모님이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자리와 모습을 갖춘 사람은 없다. 각자 저마다 인생의 우여곡절과 스토리를 통해 지금의 모습에 와 있는 것이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땐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금 왜 그런 삶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듣는다면 부모님을 훨씬 더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의 삶의 자리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날 다짐대로 그다음 해 여름휴가 때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친구들과 함께 가거나 혼자서 간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간 것은 거의 20년 만의 일이었다. 한 번 떠나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서로 각자의 삶이 바쁘고 일이 있다는 이유로 이 귀한 시간을 그동안 미뤄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여행 내내 아버지께서는 가끔씩 눈물을 보이셨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본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담담히 어린 나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신 분이셨는데 그런 분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모습은 내게 조금은 낯설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는 예전보다는 자주 멀리는 못가도 틈틈이 라도 부모님과의 시간을 가지곤 한다. 나도 가정이 생기고 누군가의 남편과 부모가 되는 순간 더 이상 쉽게 가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0대라면 부모님의 작고 연약한 등이 보이기 시작할 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보인다면 무심히 지나치지 마라. 20대의 수많은 시간을 나에게 집중했다면 30대에는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나에게 집중해준 부모님을 보기 시작하라. 그리고 될 수 있다면 함께 가까이라도 여행을 떠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작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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