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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Sep 15.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193번째 끈

문화생활

01 취미가 뭐예요?

취미를 이야기해야 할 때, 내 취미가 무엇일까 고민에 빠진다.

"취미는 인간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써 일반적으로 여가에 즐길 수 있는 정기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위키백과의 정의는 이렇다.


글쎄, 지금 나는 금전을 얻기 위해 주에 며칠은 책의 원고를 교정 교열하고, 며칠은 커피를 내린다.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들을 한다. 맥주도 마시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카페에 가서 끄적끄적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전시도 보고, 연극도 보고, 산책도 한다. 아, 운동도 한다. 내키면 코인노래방도 간다. 이 모든 게 딱 정해진 주기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내 여가 시간에 속한 일들이다.


그중 제일 말하기 간편한 것은 '문화생활'이다. 글을 쓴다고 하면 '무슨 글을 쓰냐, 읽고 싶다' 하는 대답이 돌아오고, 운동이나 코인노래방이라 하면 '운동 잘하냐', '노래 잘하냐'는 질문이 날아오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 '문화생활'이라고 퉁친다. 아, 몇 번은 산책이라고 했는데, 웃더라.

아무튼 "문화생활이요."하면 "음 그렇구나." 끄덕끄덕하고 만다. 어떤 장르,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냐고는 잘 되묻지 않는다. 가끔 그 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냐고 되물어주면 이야기가 꽃 피기도 하고.


 

02 취미는 '문화생활'입니다

참 간편한 단어다. 그런데 왠지 그 맛이 잘 나지 않는다. 영화에 몰입하는 것? 작중 인물들의 서사에 빠져드는 것? 이야기 자체에 탐닉하는 것?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 배우들의 움직임과 목소리에 빠져드는 것? 인간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 다소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것들인데, 말하기는 좀 어렵다. 잘난 척하는 것 같고.

'문화생활'이라는 단어는 좀 건조하다. 좀 이질적이다. 문화와 생활이라니. 같이 가야 하는 것들이기는 한데, 병치되기 힘든 것들이라 그런가? 흠 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03 그럼에도 '문화생활'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가지각색이다. 일하느라 피곤해서, 몸이 좋지 않아서, 불쾌한 사람을 만나서, 가을 바람이 스산해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서 등등. 그럴 때 직빵인 건 역시 문화생활이다.


취미로 삼은 것은 많지만 개중에 가장 오래가는 질 좋은 만족감을 준다. 팍팍한 현실에서 한 발자국 하늘 위로 솟아올라가는 느낌? 숨 쉬는 공기가 조금 달라지는 것도 같고. 그래서 매일같이 찾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찾는 게 효과가 좋기는 한데. 종종 시간이 많고 욕심이 과할 때는 한 주에도 여러 차례 '문화생활'에 탐닉한다.


이번 주만 해도 화요일에는 친구의 초대로 '초단편영화제'에 가서 단편 영화를 봤고, 수요일에는 영화 <나비잠>을 보았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연극 <줄리어스 시저>를. 사이사이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잡지 <빅이슈>도 탐독했다. 그래서 은근히 바쁘다. 바쁠 일 없는 생활인데, 아이러니하게 여가생활 때문에 바쁜 상황이다.


오히려 회사에 다닐 때가 문화생활이 가장 절실히 필요했는데 거길 나오고 나니까 그걸 할 시간을 가지게 된 셈.


뭐든. 일단 이 시간이 있어서 좋다. 이 생활에 욕심을 좀 더 부려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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