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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Sep 20.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195번째 끈

박완서의 에세이

01 <답답하다는 아이들>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 세대에게 너희들이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1973년, 박완서)



02 주책꾸러기

1973년에 이미 기성세대였던 고 박완서 작가는 어느 날 딸에게 '가슴 땁땁하다'라는 말을 배운다. 말이 모질어지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저희들이 뭐가 그렇게 답답하다 못해 땁땁할 일이 있을까' 궁금해한다. 자유 분방하게 사는 자식 세대에 대한 질투를 한바탕 퍼붓고 나서, '이해심 많은 부모', '신식 부모'가 돼보려고 아는 척 하다가 '주책꾸러기'가 되고 마는 자신을 반성한다. 자기가 못해본 걸 자식을 통해 해보려 드는 부모를 비판한다.



03 공명 

그런 작가는 다른 에세이에서는 통렬한 자기 비판에 빠진다.

이런 1년을 보내고, 또 한 살 미운 나이를 먹고, 추한 나이테를 두를 내가 싫다. 잠 안 오는 밤, 나는 또 1년 동안 내가 작가랍시고 쏟아놓은 말들이 싫어진다. 나는 또 작가랍시고 느닷없이 선택을 강요당했던 찬반 앞에서 무력하게 떨던 내가 싫다. 찬반 중 어느 쪽이 내 소신인가보다는 어느 쪽이 보신에 이로울까부터 생각했던 내가 싫다.   <추한 나이테가 싫다>, 1974년


작가가 부러워했던 자식 세대를 '땁땁하다'고 여기는 내가 두 세대를 뛰어 넘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공명하는 것은 참 재밌다. 나는 내 행동과 언행에서 부끄러움을 자주 느끼고,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마음을 자주 느꼈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다.


여름에는 '화'로 퉁치고 지나갔던 것들을 가을이 되니 또 스산한 바람 속에서 자꾸 반추하게 된다. 올해 말이 다가오면, 추한 나이테를 하나 더 둘렀다고 자책하게 될까, 아니면 기꺼이 더해진 나이테 한 겹을 축복하게 될까. 후자 쪽에 가깝지 않을까 섣불리 예측해본다. 피로하긴 해도 사는 게 기꺼운 나날들이다.


오늘은 종일 어느 작가의 성공론과 행복론 사이에서 기준점을 정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글 속에서 무엇이 진심인가 헷갈리고 피곤했다. 그러다 카페에 와서, 박완서 작가의 글로 말미암아 마음을 푼다. 작가라는 존재와 글이라는 매체와 그에 담긴 진심에 실낱 같은 희망을 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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