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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Oct 13. 2016

듣기의 피곤함

'들어줘서 고마워'라는 말은 겸연쩍다

"들어줘서 고마워."


한동안의 하소연이 끝나고 자리를 뜰 때가 되면 겸연쩍어하며 말을 건넨다. 어쩐지 저만 이야기한 것 같다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내가 말해본 적 없는 낯선 문장이며 10명 중 대여섯은 꼭 남기고 마는 이 문장은 하소연이 되었든 자랑이 되었든 이제껏 말을 들어온 사람이 어쩐지 더 겸연쩍은 기분이 되게 하는 기묘한 문장이다.


이 말이 왜 겸연쩍은가. 여느 때처럼 오랜 친구를 만났고 안부를 물었다. 거기서 시작된 것이다. 요즘 있었던 별 거 없는 일상을 공유하고자 했던 내 작은 바람은 끊임없이 전개되는 하소연과 힘든 이야기 속에서 전의를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의 즐거웠던 소소한 일상을 말하는 게, 나의 작은 고민을 이야기하는 게 '나쁜' 일처럼 느껴졌다. 


shutterstock.com


아 그래서 왜 겸연쩍었냐 하면. 마치 두어 시간의 커피 타임 동안 나는 동전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기 기계인 것 같은, 혹은 집 소파나 침대에 묵묵히 자리 잡고 돌아오는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형과도 같은 존재가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잘 듣는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듣는 행동이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침마당의 '이금이 아나운서' 같다거나 그렇게 듣기만 해서 언제 네 말을 하냐는 타박을 들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말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다. 논쟁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열정적인 화자가 된다. 그렇지만 도통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세상의 슬픔과 고통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피소드의 틈에서는 말을 하는 상황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듣고 듣고 집중력이 흐려지다 다시 정신을 붙잡아가며 듣다 보면, 이야기에 몰두해 피곤해진다. 그럼 다시 나는 말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나의 미묘하게 피곤한 표정을 읽어주길. 나를 더 이상 마음속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진심을 담아 귀에 담아주는 '이금이 아나운서'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듦을 방종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얼마든지 잘 들어줄 수 있는 청자이고 털어놓음으로 마음이 한 톤이라도 밝아졌으면 하는 친구이지만 당신 앞의 '대화' 상대이기도 하니까. '들어줘서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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