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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Nov 10. 2016

웬즈데이 베지터리언

한 달간의 수요 채식 기록

10월 한 달을 "웬즈데이 베지터리언(수요일 채식주의자)"으로 살았다. 거창한 포부는 없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충동적이었다. 9월의 여유로운 가을날을 보내던 중 어떤 비건(vegan) 친구를 만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을 같이 먹었다.

고기 육수와 고기 고명이 빠지지 않는 한국의 식당 음식은 비건들에게 참 힘겹겠구나 싶었지만 동참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전혀 별개의 이유로, 개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야"하는 헐거운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주의의 종류, blog.seoulfood.or.kr


집밥을 먹지 않고, 조리도 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모든 식사는 밖에서 사먹는다. 채식 식당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고 수요일은 약속을 잡기도 애매한 날이라 보통 혼자 식사를 다 해결하기에 채식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채식주의에도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하듯 가볍게 검색을 해봤고 이왕 하는 거 빡세게 하자는 결심으로 "비건(vegan)"을 택했다. (물론 제목이 알려주듯, 일주일 만에 나는 웬즈데이 비건이 아니라 웬즈데이 베지터리언이 되었다.)


1주 차 (10월 5일) - 그럭저럭 재미 붙이기

1주차의 저녁 식사

아침 : 바나나

점심 : 쥬씨의 아보카도 바나나 주스

"때웠다". 12시 수업이라 여유있게 점심을 챙겨 먹을 줄 알았지만, 늘 그렇듯이 시작 시간이 어떻든 시간에 쫓기기는 매한가지다.

저녁 : 올리브 푸가스 빵, 치아바타 빵, 양송이 수프, 푸룬

그나마 비건스러운(?) 식사였다. 마침 수프가 너무 먹고 싶어서 가격은 사악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집어들었고(피코크 제품 - 4700원),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자고 우유, 달걀, 버터 등을 안쓰는 건강빵집에서 고심해서 빵도 골랐다.


소감 : Good. 빵, 수프, 주스, 과일. 맛있는 음식들이라 채식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비건은 힘들었다. 마침 다이어트도 병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 단백질 보충원이었던 달걀과 우유를 제외하고나니 단백질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다양한 단백질 음식을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채식 단백질 공급원, thefodmapfriendlyvegan.com



2주 차 (10월 12일) -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좌 - 충격의 계란지단, 우 - 피넛버터바나나샌드위치, recipehubs.com


아침 : 요구르트

점심 : 치즈김밥, 아메리카노

저녁 : 피넛버터바나나샌드위치


소감 : Soso. 전날 밤에 메뉴 선정에 고민을 많이 했건만 시간에 쫓기느라... 그럴 때 찾게 되는 편의점, 학식당 같은 곳은 채식을 위한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하루 종일 과일만 먹거나 주스 종류, 밀가루 제품만 먹고 싶지는 않아 나름 치즈김밥을 선택했는데...! 먹다 보니 쌔한 기분이 들어 김밥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 치즈김밥에도 달걀지단이 들어가지... 맞다..." 생각지도 못한 실수였다. 그래서 이왕 먹은 김에 "달걀, 우유까지 먹는 락토 오보 베지터리언(Lacto-ovo vegetarian)"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 피넛버터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살이 찔 것 같은 맛이라 가끔만 복용하기로.



3주 차 (10월 19일) - 오! 베지터리언  


아점 : 렌틸콩 스낵

저녁 : 비건 나폴리탄, 비건 버거

간식 : 크래프트 비어


소감 : Very good. 저녁 약속이 있으니 점심은 미리 사둔 Calbee사의 렌틸콩 스낵으로 해결했다. "아마 맛은 없을 거야. 건강에 좋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봉지를 우두둑 뜯는 순간 매콤한 냄새가 올라와 식욕을 자극했다. 일반 감자칩보다 식이섬유나 단백질 함량이 월등히 높은데도 맛은 정말... 좋았다. 맛을 모르는 과자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오만했다고 느꼈을 만큼, 처음 먹어보는 매콤 짭짤한 맛있는 과자였다. 다이어트를 할 때, 감자칩 대용으로 맥주와 먹어도 좋겠다.


저녁식사도 아주 훌륭했다. 약속이 잡혀서 "비건식"을 하기로 다짐을 받아내고 합정역 근처 "살롱 딜리셔스"에서 비건 버거와 비건 나폴리탄을 시도했다. 나폴리탄은 면이 두꺼웠고 버섯이 많아 포만감이 빨리 왔다.

비건 버거의 패티는 콩으로 되어 있어서 실제 고기의 풍미에는 아무래도 미치지 못하나, 나쁘지 않았다. 콩패티나 버섯, 샐러드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양식을 과하게 먹을 때 느껴지는 더부룩함이 없었다. 산뜻한 기분. 종종 채식 식당을 찾아가 동기부여를 받고 와도 좋을 것 같다.



4주 차 (10월 26일) - 익숙함과 귀찮음 사이

토마토모짜렐라 샌드위치

점심 : 토마토모짜렐라 샌드위치

저녁 : 과자

소감 : Soso. 한 달 체험의 마지막 날이라 잘 챙겨 먹으려 했지만, 메뉴 선택의 귀찮음으로 샌드위치를 택했다. 그렇다. 채식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귀찮긴하다. 그래도 음식이 맛있으면 다 괜찮아진다.



총평 : 내가 행복한 만큼의 행동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기만족감이든, 의지를 테스트해보는 시험이든, 순수한 마음이든, 좋았다. 일주일에 하루를 채식한다는 것은 채식주의자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정도이지만, 이런 방식으로도 채식을 할 수 있다고 알리고 싶어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물론 "웬즈데이 베지터리언? 쿨한 락밴드 이름 같아!"정도의 칭찬 같은 놀림을 들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하루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불편 아닌 불편보단 일주일 중 단 하루가 주는 긍정적인 감정의 편익이 더 컸다.

내가 행복한 만큼만 채식을 해도 인생의 7분의 1은 채식을 하는 셈이니, 꽤 멋지고 꽤 즐겁고 꽤 할 만하다. 시작은 헐거웠지만 행동의 결과는 생각보다 알찼다. 11월은 떨스데이 베지터리언(Thursday Vegetari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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