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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an 30. 2017

진흙탕을 같이 걸어줄 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나를 만났다

한동안 내 발 밑에는 진흙의 늪이 가득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나갈수록 발을 더욱 아래로 끌어당기는 짙은 농도의 그것.


두려웠다. 다시 나갈 수 없을까봐, 손을 잡아달라고 소리쳐도 주변에 아무도 없을까봐. 목소리를 삼켰고 나는 점점 더 말라갔다.


바라는 것이 없었다. 욕망이라는 게 사라진 사람의 모습은 끔찍하게도 건조했다. 해야 하는 일만 사무적으로 끝을 내면 그뿐이고, 하고 싶은 일도, 꿈꾸는 바도 없이 무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잘만 갔다. 세상은 매일 중요한 일을 쏟아냈고, 사람들은 대체로 분노했고 때로는 즐거웠다. 나는 혼자였다. 그렇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 슬펐다.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나왔다


그렇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 우연히 나는 믿음직한 친구에게 넌지시 나의 우울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고 우리는 얼마간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고 돌파구를 찾고 싶은 속내를 나눌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발을 뻗으면 더 깊이 빠질까 봐 한 걸음 나아갈 용기도 못 내던 나는 비로소 한 걸음을 뻗었다.



"저 많이 우울해요. 매일 무기력하고 불안하구요. 잠도 잘 못 자요."

이렇게 말을 꺼낸 건 수많은 불면의 밤이 지난 후였지만 참았던 눈물이 떨어지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충분했다. 창피함도 모르고 엉엉 울고 나서야 비로소 퉁퉁 부은 눈과 슬픔이 가득 어린 내 얼굴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읽을 것처럼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하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울감은 상태예요. 어떤 감정이 우울함을 만드는지, 순간의 감정과 그 변화를 잘 들여다보세요."


아리송하게 들리던 말을 곱씹었고 단지 우울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선을 복기했다. 그 안에는 분노도 있었고, 좌절감도 있었고, 수치심도 있었고, 불안도, 때로는 기쁨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떨림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우울함"이라는 색깔로 명명하고 검은 천으로 덮어 버렸다. 그렇게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감정은 여전히 자기만의 색깔을 진하게 띠고 있었고 색색의 감정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내 얼굴의 회색빛을 조금씩 거둘 수 있었다. 



"고맙고 기특해."



늪인 줄 알았던 발 밑이 진흙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발을 떼 앞으로 걸었다.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전해본 것도, 기특하다고 다독여본 것도 처음이었다.

주는 사람도 나고 받는 사람도 나인 이상한 경로의 표현법은 큰 울림을 전했다. 한 번 더 눈물을 쏟았다. 진흙탕을 다시 만나도, 도저히 무서워 눈을 못 뜰 것 같아도, 한 발 한 발 손을 잡고 함께 걸어줄 든든한 동반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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