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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Feb 07. 2017

나의 부엌

나의 방, 나만의 부엌이 생겼다

나만의 방이 생겼다. 대학 생활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내가 홀로 살게 된 몇 평 남짓의 방. 그곳에는 룸메이트도 없고 친구를 만나면 왁자지껄해지는 대학생들의 활기도 없다. 그러나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놓아도 눈치볼 필요없는 나만의 독립적인 생활이 있고, 무엇보다 나만의 부엌이 있다.


여름의 요리 1 _ 나를 위해


나는 요리를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왜? 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한다. 요리가 맛있다는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은 재료의 낭비이자 엄마의 요리에 대한 거부라고 생각했던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료를 다듬기만 17년이었고 그마저도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하느라 손에 칼을 쥔 적은 몇 번 없다. 스무 살이 넘어도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곤 카레라이스와 카레와 커리...


여름의 요리 2 _ 엄마를 위해

알지 못했다. 요리를 계획하는 과정,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는 과정, 조리 과정, 먹고 난 뒷처리의 과정 중 내가 아는 거라곤 먹고 난 뒤 설거지 정도였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아마 작년 즐겨 보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덕이 컸으리라. 우연찮게 마지막 여름 방학 동안 서울에서 할 일이 없던 나는 집에 내려가 방학을 보냈고 할 일이 무지하게 없어서 조금씩 요리를 해봤다. 나를 위해, 엄마를 위해, 친구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과정은 뿌듯했다. 비록 칼질이 서툴고 간을 못 맞춰 애매한 맛이 나더라도 즐거웠다.


여름의 요리 3 _ 홍콩에 사는 친구를 위해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내 방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공간은 부엌이다. 웃을 일도 별로 없고 생각은 너무 많은 요즘을 달래는 건 요리를 하는 시간이다. 양파를 썰고 불을 올려 기름을 두르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느 타이밍에 재료를 투하해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을까." 그 이상의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뜩이나 서툰 초보 요리사에게 필요 이상의 생각은 곧 재료의 낭비다.



예쁜 옷은 못사도 나무로 된 예쁜 수저를 사서 기분이 좋다. 외식은 못해도 기름 두를 후라이팬을 마련해서 기분이 좋다. 그런게 아닐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내가 가질 수 있는 한 가지를 갖는 것. 품이 많이 드는 요리는 못해도 이 순간 내가 가질 수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누가 말했더라? “따뜻하고 별 탈 없고 담배만 있다면 그게 행복이죠."라는 말처럼 내 방이 있고 별 탈 없고 부엌이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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