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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Sep 27.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199번째 끈

내가 낫지 않는 이유

병이 들었다. 감기라는 사소한 병이지만 콜록콜록 기침과 시도때도 없이 솟는 콧물에 자꾸 잠기는 목... 등 온몸이 신경 쓰인다. 두 번이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는데도 이놈의 감기는 쉬이 물러가지 않는다. 독하다. 왜 이렇게 안 낫지? 시간을 내어 내가 왜 낫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01 약과 밥

약은 식후 30분에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약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밥 시간을 맞추는 게 더 힘이 든다. 아침은 자다가 거르는 게 당연하고, 점심과 저녁은 터덜터덜 걷다가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주로 토스트, 햄버거, 가끔 내키면 밥. 오늘은 스벅에 간 김에 베이글. 먹으면 잘 먹는데, 요즘은 당기는 게 별로 없어서 고르기도 힘들다. 대충 먹고 물 한 컵에 약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러니까 안 낫지.’

포장마차 국수.


02 정신의 면역력

두 번째 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께 하소연했다.

“아니, 며칠 전에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5일치나 받아왔는데 왜 안 낫는지 모르겠어요.”

가만히 진찰을 보시던 선생님이 대꾸했다.

“감기는 면역력의 문제예요. 약 먹고 주사 맞는다고 다 낫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쉬어야 해요.”

모네전.

할 말이 없었다. 쉬라고 있는 추석연휴에 나는 잘 쉬고 있었는가. 쉼을 가장해 책 읽고 영화 보고 전시회에 가고 계속 걷고, 시도 때도 없는 카톡에 웹서핑에 뭐에 뭐에... 정신의 외상을 입을 일도 있었고. 감기에 걸렸을 때를 기준으로 별 다를 게 없었다.

출퇴근을 안 하니 몸은 좀 편해졌을지 몰라도 정신의 쓰임은 그대로였다. 신경 쓰고 있는 것들을 조금 줄이기로 마음 먹었다. 핸드폰 조금만 보고 책이든 영화든 투 머치 인풋은 금지! 잘 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오늘도 책 읽고 영화를 봤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좀 늘려야겠다는 다짐은 좀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다.


03 술?

술 먹지 말라는 처방은 받지 않았으니까 술은 먹는다. 어제는 맥주, 오늘은 토닉주. 레몬을 짜 넣었으니 비타민C가 보강될 거란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정말 술 때문에 안 낫는 건 말이 안 돼.’라는 생각을 하면 술을 마시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데, 알면서도 마신다. 사실 정신이 좀 쉬라고 마시는 건지도 모르겠는 건 정말 말도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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