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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Dec 10. 2018

변하지 않는다 말하지 말아요

사람 안 변해 or 사람이 변하더라

같은 말 여러 번 하기 싫어하는 나도 요 며칠 새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아... 너무 추워.” 양 손에 핫팩을 쥐고 배에 큼지막한 것도 하나 붙여 놓고도 시린 바람이 쌩 불 때마다 덜덜 떨며 빠르게 걷는다.


재밌게도 아주 어릴 때는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렸다. 감기에 걸리는 일도 거의 없어서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물었다. 입원 한번 해보는 게 남모를 소원일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부는 바닷마을 고향의 겨울도 두툼한 패딩 없이 잘만 났다.


그런데 이제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정말, 아주 많이. 추운 곳에 있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오들오들 떠는 건 기본이다. 수족냉증도 심하다. 내 손을 잡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들에겐 멋쩍게 마음이 따뜻해서라고 말하지만 온기를 나눠주지 못하는 내 차가운 손이 밉기만 하다. 실내에서도 핫팩, 수면양말, 담요가 반드시 있어야 책상에 앉아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없이는 꼼짝없이 전기장판에 파묻히는 신세다. 게다가 감기가 잘 걸리는 몸이 되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잘 안 떨어지는 감기로 고생한다. 동네 병원을 하나씩 섭렵하다 보면 좀 비참한 기분마저 든다.

변했다. 어린 날부터 오늘까지 긴긴 시간 사이에 몸은 조금씩 변했나보다. 내 것인데도 내가 모르게.

변한다. 건강의 문제는 사소한 수준이고 생각, 가치관, 취향... 아주 많은 것이.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변화가 있다. 시계추처럼 갔다 왔다 오가고 되풀이하는 반복이 있고, 곤충이 허물을 벗어 재탄생하듯 색다른 모양을 만드는 변태도 있고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한 변화도 있다. 에피파니(epiphany : 직관, 깨달음이 오는 우연한 순간.)라고 하는 순간적인 각성에 의해 찾아오는 변화도 있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것은 변화한다. 시간에 의해 음식은 썩고, 사람은 늙고, 푸르던 이파리는 어느새 낙엽으로 떨어진다. 아래로 떨어지는 사과가 증명하는 중력의 법칙 같은 자연 법칙을 제외한 대부분이 변한다.


그런데 헷갈리는 게 하나 있다. 사람의 문제다. 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에이, 사람 안 변해~.”
“사람이 변하더라.”

나는 상반되는 두 말을 자주 혼용해서 쓴다. 이유는 계속 헷갈리기 때문.

언젠가부터는 헷갈린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저 말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찬찬히 생각해봤다. 세상의 모든 게 다 변하는데 인간만 안 변한다는 건 오만한 발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을 정하기로 했다. 사람은 변한다고.

아침에는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하다 점심 메뉴로 짜장면을 택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하면 단순할까? 아무튼 취향, 성격, 태도, 가치관, 행동 등 그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은 변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 만에든 10년 수행의 결과이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변화에 대한 바람 때문이다. 사람이 변한다고 믿으면 노력할 수 있다. 인간 따위야 우주 먼지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자꾸 자기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갈 수 있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지.”라고 자기를 파악하는 것만큼 “무뚝뚝한 편이지만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 변화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

도와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게 될 거 같아?”라고 면박 주지 않고 “그래. 한번 해봐. 보기 좋다.”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어쩌면 예쁜 말씨 덕에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밝아진 상대방 표정에 내 기분이 더 좋아지고,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며 힘을 낼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이로써 새로운 관계의 국면이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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