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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Dec 30.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214번째 끈

삼삼한 카페의 하루

01 공교롭게도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한 인간이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부분에 접어들었을 때 우르르 손님들이 몰려 들어왔다. 커피 3잔을 5잔으로 나눠 마시고, 말 끝마다 욕설을 붙이고 대낮부터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얼굴엔 이미 취기가 얼큰히 올라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어느 인간이든 조금씩은 실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다.


02

"아가씨는 밥 먹었어?"

참으로 한국적인 질문이다. "아뇨, 빵 먹었는데요." 하는 농을 자주 치는 나지만, 연말에 애정 어린 관계들이 카페에 앉아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커피머신 앞에서 묵언수행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 통속적인 질문조차 막을 새 없이 마음에 훅 들어온다. 만면에 미소를 함빡 짓고 그 따뜻한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03

띠링~ 출입문 벨이 울리고 깐깐해 보이는 아주머니 셋이 들어왔다. 긴장하기 시작한다. 분명 종류별로 다른 음료를 시키고 '한 잔은 진하고 한 잔은 연하게.', '설탕은 어딨고?', ‘과일청은 담그는 거죠?’ 같은 주문과 질문을 한번에 쏟아내고 잔을 하나 더 달라고 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세 분은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생강차나 세 잔 주문했을 뿐이었다. 딴짓을 하다 들리는 대화 내용은 아주 흔하디 흔한 가정 불화였다. 피치 못하게 엿듣는 나까지 마음이 무거워지고 세 사람의 연말 저녁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한 분이 앞서 부탁하신 커피 찌꺼기나 정성껏 비닐에 담았다. 세 사람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다 말고 다시 들어와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사진이야 몇 장이고 찍어드릴 수 있어요.' 속으로만 이야기하며 세 사람의 시간을 사진 속에 담았다. 한껏 무거운 이야기를 쏟아냈으면서도 나가는 발걸음은 저처럼 산뜻할 수 있는 것. 인간은 아직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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