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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Dec 27. 2018

<삼삼한 이야기> 그 213번째 끈

물에의 끌림

01

나는 언제나 물에 사로잡힌다. 내가 기질적으로 너무 메말랐거나 뼛속 깊이 잉글랜드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에 약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까운 곳에 강이 없으면 온전한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 (중략) 예전부터 아플 때나 건강할 때, 슬프고 쓸쓸할 때나 기쁠 때, 자꾸만 강으로 발길이 향하곤 했다.

작가 올리비아 랭은 버지니아 울프의 궤적을 따라 우즈강을 탐험한 책 <강으로>에 위와 같이 썼다. 버지니아 울프는 한동안 우즈강 인근에서 살았고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했다. 그리고 나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사랑해 마지 않는 작가와 '우즈강'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강으로>를 펼쳤고 첫 문장에서부터 물에 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은 저 잉글랜드 작가와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나 역시 마음만 먹으면 바다에 닿을 수 있던 곳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가, 물에서 가장 큰 위안을 받고 산다. 한강변, 천변, 비 오는 날, 가끔 보러 가는 바다 등. 물이 가득 모인 것을 보면 기분이 편해진다. 복잡한 생각들이 물가를 걷다 보면 정리가 되곤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걷는 것만으로 꼬인 심사가 한결 편해지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입을 닫고 걷다 보면 요동치던 마음이 흐르는 물길처럼 유려하게 고요하게 리듬을 탄다.



02

얼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몇 달 하다가 흐지부지했던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 생존 수영을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수영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이 좋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는 걸 넘어 물 속에서 물의 흐름과 부대끼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는 초보 단계다. 다리 움직임도 호흡도 다 걸음마 단계라 다른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스텝이 엉킨 듯 꼬르륵... 물 안의 내 몸은 엉망이 되고 나는 다시 조용히 집중하고 평정을 찾으려 노력한다.

한번은 배영을 하다가 다른 강습생들이 일으킨 물결에 몸이 휘청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작은 수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물의 흐름에 따라 수영하는 일도 어려운데 저 먼 바다의 파고를 타는 일은 얼마나 큰 일인가.
수영장의 레일 안에서 고요히 발버둥 치는 초심자는 그래도 물 안에서의 시간이 소중하다.



03

물은 종교와도 관련이 깊다. 어떤 종교에서는 성수를 뿌리며 세례를 주고 신자를 받아들인다. 또 다른 종교에서는 아예 물 안에 몸을 잠기게 하며 과정을 밟는다. 이 때의 물은 사람의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추운 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다 보면 조금은 언짢거나 복잡한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쏟아지는 따뜻한 물, 향긋한 샤워젤 향과 풍성한 거품으로 말미암아 기분을 전환시키고 나의 상태를 새로이 하는 것. 나는 종교가 없지만 씻어내고 환기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물 곁을 걷고, 물 안에서 온몸을 움직이고, 샤워로 하루간의 땀과 불순물을 씻어내는 생활 속에서, 나는 매일 물로 하여금 종교와도 같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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