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한 이야기> 그 열여섯 번째 끈

세 번의 가을방학

by 수수한

#장면 1_집


가을도 아니고 방학도 아닌데 가을방학 노래를 듣는다. 특히 2010년에 나온 노래들을 즐겨 듣는데, 청아한 계피의 음색과 마음을 간질이는 가사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내 입은 재생되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고 있다.


"퍼플은 우울의 물증~ 갈색은 고독의 외피~"


#장면 2_지하철 승강장


집에 가는 초저녁의 지하철.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이 곧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뒤 편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같은 앨범의 다른 트랙이었다. 불안한 음정과 조절되지 않는 크기의 목소리. 남자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부를 때의 전형적인 무아지경 상태였다. 화들짝 놀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놀란 건지, 놀랐다는 표현을 하는 건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의아하다는 (또는 이상하다는) 표정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아랑곳않고 노래를 계속했다.



#장면 3_다시 집


여전히 가을방학의 노래를 재생하고 설거지를 한다.


"우편함이 꽉 차 있는 걸 봐도 그냥 나 못본 척 하곤 해요~"


저절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문득 그 날의 승강장이 생각났다. 그 자리에 있던, 승강장에서 눈빛이 변하던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 거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집에서는 청소기를 돌리면서 춤을 추고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지만,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 점잖은 시민이 되는 나와 같은 사람들. 우리에게는 차마 밖에서 보여주지 않는 모습들이 가득하다. 그런 모습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 날의 놀란 표정들은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건 사회적으로 낯선 행위니 아무리 흥이 넘쳐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아요." 란 말 대신 표정으로 우려를 전달했던 건 아닐까.


적어도 나는 모두에게 비밀이 있는 편이 더 좋은 세상일 거라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삼삼한 이야기> 그 열네 번째 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