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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Mar 23. 2017

신념을 이기는 욕망

영화 <미스 슬로운>

내 나이 열 다섯,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 과학 교과 담당이셨던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중간고사를 본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번 성적 좀 보자. 수학은 괜찮고 영어는 좀 더 올리면 좋겠네. 그런데 누구야, 너는 왜 이렇게 욕심이 없니? 너희 엄마만큼만 조금만 욕심이 있고, 더 열심히 하면 전교권에서 놀 수 있을텐데…”


착한 학생 연기에 열중했던 그 나이의 나는 맹렬히 땅을 보며 열심히 선생님 말씀을 들었지만, 욕심이 나오는 마지막 대목에선 살짝 고개를 들고 선생님의 눈을 봤던 것 같다. “욕심”이라는 단어가 없는 나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날이었다.


열 다섯에서 스물 다섯까지,

이미지 출처 : Wikicommons

시간이 많이 흘렀고 욕망이 들끓는 20대를 보내고 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고,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싶고, 글도 더 잘 쓰고 싶고, 지금보다 많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고, 본보기가 되는 멋진 사람이 되고도 싶다. 소소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갖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욕망은 나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대로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어젯 밤, <미스 슬로운>을 보면서 생각했다.
‘간만에 사랑하지 못할 주인공을 만났네.’ 
슬로운은 승리를 위해 모든 걸 계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총기 사건에 트라우마가 있는 동료의 과거를 동의없이 폭로하고, 도청과 감시를 일삼고, 심지어는 매춘을 하는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면서 하나의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렇게 치밀하게 머리를 굴리고 발로 뛴 결과는 성공. 계란으로 바위 깨기 같던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다.

슬로운의 동력은 욕망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거나 이름을 날리는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욕망이다. 총을 규제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보다 미 총기협회를 비롯한 정경의 거대 괴수들과 맞선 이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욕망이 그녀를 움직인다.


또, 그녀는 말한다. 이것이 그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일이었다면, 청문회에 서고 감옥에 들어가는 귀찮은 일들을 겪으면서까지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거대하고 높은 벽처럼 놓인 카르텔을 뛰어넘겠다는 욕망으로 슬로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난공불락이던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통과시킨다. 때로는 자기만을 향하던 욕망이 사회의 변화를 위하는 욕망과 만나 하나의 선을 그리며 꽂히기도 한다.

열 다섯의 내가 ‘욕심없는 아이’로 불렸던 이유는 학교 성적에 대한 욕망이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욕망은 공부 잘하는 딸을 두고픈 엄마의 것이었고, 전교 몇 등하는 학생의 담임이 되고픈 선생님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욕망 덩어리가 된 스물 다섯 여자의 욕망은 오로지 “내 인생에 대한 욕망”이다. 그 누구도 내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글을 잘 쓰면 좋겠다고 조언하지 않는다. 취업이 잘 되면 좋겠다고 기원할 뿐. 그래서 내 욕망은 더 내 심장을 향한다. 그리고 이 욕망이 사회와, 타인과 만날 날을 어렴풋이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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