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한 이야기> 그 63번째 끈

그림, 세 가지 생각

by 수수한

01 첫 그림을 그린 날

4B 연필을 깎아 에이포 용지에 첫 그림을 그린 날, 그림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손이 가는 대로 흘려내고 싶었던 날을 기억한다. 희뿌연 방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한 장에는 내 마음을 그려내고 한 장에는 으스러진 슬픔을 그려냈다.



02 며칠 전의 밤

정리가 되지 않아 글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또다른 어느 밤, 다시 연필을 잡았다.

눈에 보이는 어느 책의 표지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을 내려놓고야 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03 누군가의 드로잉

존 버거의 스케치북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귀가 먹먹해지고 새로운 생각들이 잘 들리지 않으면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드로잉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아주 귀한 방법입니다. 이야기를 쓰는 것과 같아요."

존 버거의 드로잉은 글 같다. 거기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의 글은 그림이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장면들을 상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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